요즈음의 LCD 모니터는 뭐든 다 숫자로 표시된다.
26인치에 27인치에 30인치, 명암비 1000:1이 어쩌고 저쩌고, sRGB 대비 105% 광색역이 이러쿵 저러쿵, 반응속도 5ms 에서 왔다 갔다, 아무튼간에 모니터 스펙을 보고 있노라면 밑도 끝도 없이 쏟아지는 숫자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CPU 속도 경쟁이 한창이었을 때는 기가헤르츠 단위만 보고 조금이라도 더 빠른 걸 선택하면 끝이었지만, 모니터는 대체 뭘 보고 고르란 건지 헷갈리기 딱 좋다.

그래도 제조회사는 계속해서 숫자를 표기하고, 사람들도 그 숫자를 주의깊게 본다. 왜?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기 때문이다.
모니터 4U가 리뷰에서 모니터의 RGB 특성, 감마값, 색온도, 기타 등등, 여러가지 것들을 계측기로 정량화해서 보여주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열광적인 (디스프레이) 마니아들은 모니터 4U의 리뷰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어쨌건 인간이 아닌 기계가 측정한 숫자처럼 확실한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 숫자가 아무리 정확하면 뭐 하나, 그걸 해석하는 방법을 모르는데.

보통 사람들 눈앞에 알쏭달쏭한 그래프를 딸랑 갖다놓고 '계조선형성이 우수하다'느니, 삼각형을 여러 개 겹쳐놓고 'AdobeRGB 대비 몇 퍼센트가 어쩌고' 떠들어 봐야, 무슨 얘긴지 알아 처먹을 리 만무하다. 일부러 그런 걸 열심히 공부해서 리뷰를 '해석'해야 하는 수고를 들이는 사람은 한 줌 마니아에 불과하다. 일반인들에겐 말빨로 잘 풀어서 설명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 리뷰에서 숫자보단 말빨에 의지할 생각이다. 결코 내가 숫자를 측정하기 귀찮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정말이다!

1) 모니터 외관

HP의 LP2475W는 베젤이 굉장히 얇은 디자인이다. 굿디자인 상을 줄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디자인이다. 베젤이 무광택 플라스틱이란 점도 마음에 든다.
별매품인 후드를 장착할 수도 있는데, 이 후드만 거의 10만원에 팔리고 있다. 요즘 옥션이나 지마켓에선 LP2475W 구매시 후드를 증정하는 업체도 있으니, 후드가 필요하다면 따로 사지 말고 이런 기회를 잡는 게 좋을 것이다.

스탠드는 좌우 회전, 앞뒤 경사 조절, 90도 회전(피봇) 기능을 지원한다. 입력 포트는 DVI 2개(VGA 변환 케이블 1개 제공), S-VHS, 컴포넌트 단자 등이며, USB 허브 기능도 가지고 있다.

2) 모니터 특성

스펙상으로는 24인치 S-IPS 패널을 사용했다고 한다. 소위 H-IPS라고 불리는 패널로, LP2475W에 사용된 건 LM240WU4라고 한다. 해상도는 24인치 모니터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1920x1200이다.

이전에 썼던 모니터는 LG의 W2600HP였는데, 이건 26인치 광색역 H-IPS 패널을 쓴 모니터였다. 그런데 이 모니터는 소위 말하는 계조선형성이 아주 최악이었다. 회색조로 그라데이션을 그으면 어느 부분은 희끗한 오렌지색으로, 어느 부분은 희푸른 색으로 표시되는 등, 울긋불긋 얼룩덜룩의 연속이었다. 색깔도 굉장히 묘하게 튀어서, 아무리 캘리브레이션을 해도 맞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같은 패널을 쓴 M2600D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LG나 삼성에서 생산되는 패널 중에서도 정말 좋은 건 애플이나 에이조 같은 업체로 납품된다. LG, 삼성, 델 같은 업체에선 그보다 한 등급 아래 패널을 쓰기 일쑤고, 중소기업은 아예 최하위 등급의 패널을 쓴다.
예전에 삼성의 S-PVA 패널을 쓴 델 22인치 모니터를 잠깐 쓴 적이 있는데, 그땐 정말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휘도는 너무 높고, 화면은 진주조개를 갈아서 뿌린 듯이 번쩍거리고, 색깔도 개차반이었다. 근데 회사에서 쓰는 22인치 에이조 2231W은 최고다. 그라데이션도 부드럽게 표시되고, 색깔도 정확하고, 눈도 편안하다. 같은 S-PVA 패널을 썼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 개인적으로 눈에 주는 부담은 패널 종류보다는 휘도와 도트 피치가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2ch의 일부 쪽바리들은 히다치 S-IPS와 샤프 ASV 패널이 좋다고 주장하고 삼성과 LG 패널을 깎아내리지만, 실제로 에이조에 사용되는 S-PVA 패널은 눈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패널 종류를 따지기에 앞서 적당한 휘도와(약 80에서 100칸델라 수준) 적당한 수준의 도트 피치(최소 0.27mm 이상)를 확보하는 게 더욱 중요할 것이다.

LP2475W의 패널도 상당히 좋은 패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회색조 계조도 부드럽게 표시되고, 눈도 편하고, 색깔도 꽤 정확하다. 광색역 모니터답게 sRGB 모니터보다 원색이 좀 더 진하게 표시되긴 하지만, W2600HP처럼 괴상하게 뒤틀리진 않는다.

기본값은 6500K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이게 모니터 4U 리뷰나 TFT Central의 리뷰에서 지적했듯이, 정확하게 6500K가 아니다. TFT Central에선 측정 결과 약 5500K였다고 했는데, 내가 스파이더 3 센서로 측정한 결과는 7500K였다!
다른 리뷰에선 펌웨어 버전이 GIG 03X 대였던 반면, 내 LP2475W의 펌웨어 버전은 GIG 045였다. 아마도 펌웨어가 버전업되면서 기본 색온도 값이 바뀐 게 아닐까 싶다. Custom Color의 RGB값을 수동으로 조정해서 6500K로 맞췄는데 그 값은 대략 다음과 같다.

R: 255 (기본)
G: 201
B: 210

그리고 측정 결과, 감마 값은 정확하게 2.2였다.

3) ICC 프로파일 & 캘리브레이션

HP에선 윈도우 전용 ICM 파일만 제공한다. 하지만 맥 컬러싱크 유틸리티에서 간단하게 맥용 컬러싱크 프로파일로 변환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웃기게도 광색역이 아닌, sRGB 색역으로 프로파일이 만들어져 있다! 이거 바보들 아냐? 너무하잖아!

스파이더 3 프로로 캘리브레이션을 해 봤지만, 계조 선형성이 무너지는 등 캘리브레이션하기 전보다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 결국 색온도만 맞춘 상태로 타협을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가 가진 스파이더 3 센서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중인데, 판매업체에 보내서 제대로 측정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만일 센서에 문제가 있다면 위에 적은 값들은 죄다 수정해야겠지만....

4) OSD

이 모니터의 유일한 문제점이자 최대의 문제점, 그것은 OSD다.

굳이 말하자면, 피자를 처먹고 캔맥주를 마셔대며 한참 놀아제끼던 프로그래머가 일정을 코앞에 두고 술과 기름에 찌든 머리를 야구 배트로 두들겨 가면서 대충 만든 느낌이랄까. 아무튼 최악이다.

일단, 가장 많이 쓰는 밝기/대조 조절도 일일이 OSD 메뉴에 들어가야만 조절할 수 있다. 좋아, 뭐, 이 정도는 참아 주지.
베젤의 파워 LED의 On/Off 설정을 Off로 맞추면 일시적으로 LED가 꺼진다. 하지만 모니터를 다시 껐다 켜면 LED에 짠 하고 불이 들어온다! 뭐냐, 너, 치매 걸린 거냐?
입력 단자 스캔을 하는 데는 거의 2, 3초 가량 걸린다. 입력 단자를 전환해서 다른 화면을 띄우는 데에는 1, 2초가 소요되고, 화면을 바꿀 때마다 큼지막한 OSD를 5초 이상 띄워 준다. 이건 또 뭐냐? 내가 화면을 바꿨다는 것도 모를 거 같아서 이러는 거냐? 날 바보 취급 하면 행복한 거냐, 응?

5) 결론

이건 물건이다. 정말 물건이다. 에이조의 FlexScan 라인과 비교해 봐도 전혀 손색이 없으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HP에서 이런 걸 만들다니! 신이시여, 그대의 섭리는 참으로 짐작하기 어렵나이다!

지금도 그래픽 파일이나 동영상을 열어보면서 놀라고 있다. 전에는 뚝뚝 끊어져 보이던 그라데이션이 이제는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엄청 튀던 색깔이 이젠 차분하고 자연스런 색깔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

만일 에이조나 애플 모니터를 구입할 계획이 있다면 차라리 이걸 구입하시기 바란다. 내 장담하건데, 돈값을 하고도 한참 남을 것이다!

총점 : 9점 (10점 만점)
장점 : 뛰어난 계조선형성, 넓은 색역, 다양한 입력 단자
단점 : 멍청한 OSD, 보급형에 비해 비싼 가격
2009/06/07 16:07 2009/06/07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