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에는 신국의 도가 있다. 어찌 중국의 도로써 하겠느냐"
- [화랑세기] 중에서 발췌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이종욱 지음 / 김영사
나의 점수 : ★★★★★


조기영 씨가 편역한 [화랑세기] 서문에 의하면, [화랑세기] 필사본은 1989년 부산에서 처음으로 재야 사학자인 이태길 씨에 의해 공개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1933년부터 42년(혹은 44년)까지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서 근무한 남당 박창화씨가 원본을 보고 필사한 것이라고 한다.

[화랑세기]는 공개되기가 무섭게, 뜨거운 진위 논쟁에 휩싸였다. 애초에는 위서로 보는 견해가 압도적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깊이있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진본일 것이라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화랑세기]에서는 포석정을 포석사(鮑石祠)라고 하며, 여기서 제사를 지냈나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99년의 발굴 결과 포석정은 왕의 유흥지가 아닌 사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만일 이 책이 진본이라면, 화랑이 '정예 무사집단'이었다는 순진무구한 믿음은 기댈 곳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화랑세기]의 '화랑도'는 왕실의 권위를 높여주는 어용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랑이 무예를 연마하고 전쟁에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존재 이유라기보다는 부수적인 의무에 불과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는 [화랑세기]가 진본이라는 가정 하에, 화랑과 신라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데 중점을 둔다. 오랜 세월 동안 수수께끼 속에 묻혀 있던 신라인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을 [화랑세기]라는 책을 통해 밝혀내고자 시도한다.
[화랑세기]의 화랑들이 말하는 '신국의 도'가 무엇인가? 신라 왕실과 화랑의 관계는 무엇인가? 화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설명하고자, 저자는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여 [화랑세기]의 기록을 현대의 고고학적 자료와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비교 분석한다. 마복자, 색공 등 낯선 단어들에 대한 깊은 연구와, 그로써 얻어진 골품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책의 말미에선 여러 가지 증거를 나열하며 [화랑세기]가 위작이 아닌 진본임을 재차 강조한다. 이 부분은 거의 6~70페이지에 달하는데, 딱히 새로운 증거가 눈에 띄진 않는다. 이전부터 알려졌던 증거 혹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따름이다. [화랑세기]가 진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은 아예 읽을 필요도 없으리라. 어차피 [화랑세기]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애시당초 이 책을 사보지 않을 테니까, 고려할 필요도 없을 테고...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작은 단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학술적, 대중적 완성도는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해설도 깔끔한데다 사진 자료나 그림 설명도 풍부해서, 삼국 시대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술술 읽어내릴 수 있다. 조기영 씨의 [화랑세기] 번역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도 남는다. 다만 그 분량이 500여 페이지에 달하니만큼 무게도 만만치 않은지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엔 꽤나 부담스럽다.
2004/10/23 20:07 2004/10/23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