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린외전

도서비평 | 2004/06/16 23:23 | djhan
"저같은 놈은 그럼 상관 없겠군요. 내공같이 귀한 물건은 저한텐 없으니까."
- 마달, 좌백의 [혈기린외전] 중에서

"혈기린, 이 개새끼야! 널 만나러 반 만리를 걸어왔단 말이다! 어서 나와서 모셔가란 말이다!"
- 왕일, 좌백의 [혈기린외전]중에서


질풍노도의 중고등학교 시절, 무협 삼매경에 빠진 아버님을 둔 은혜로 인하여 수천 권에 달하는 세로줄 무협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한 90년대 이후로는 무협지를 거의 보지 않았다. 왜냐고? 답은 간단하다. 무협지 속의 영웅호걸처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두주불사 술을 퍼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웅호걸이 되기는커녕 몸만 축났을 뿐이니, 과연 호걸처럼 술을 퍼먹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걸 몸소 체험한 다음에야 깨달았음은, 실증을 통해서만 진리를 인정하는 이공계의 속성이 뼛속 깊이 박혔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태까지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보느라 고생이 많았을 여러분들, 머리를 쥐어뜯는 걸 멈추시고 배꼽 아래 단전에 기를 모으며 마음을 가다듬으시라. 여기서 파란만장한 90년대의 이야기를 늘어놔봤자 별무소용이란 사실은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80년대 초중반, 독서계는 김용의 [영웅문]이 장악하였으며 비디오 시장은 정소추의 [초류향] 시리즈가 집어삼키다시피 했다. 그리고 대본소를 중심으로 한국산 무협지가 대량으로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 90년대로 들어오면서 무협지 광풍이 언제 불었던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시장이 쪼그라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으로 생산된, 천편일률적이고 황당무계하며 조악한 무협지에 사람들이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리. 수원수구로다.

그런데 이즈음에 '신무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50년대, 이전의 무협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선보였던 양우생, 김용, 고룡 등을 중국에서 '신파 무협'이라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다시 말해 '신무협'은 80년대 대본소용 세로줄 무협지와는 전혀 달랐으니, 그것은 바로 '원점으로의 회귀'였다.
대본소용 무협지는 무술의 고증, 지리의 고증, 인물의 고증, 역사의 고증,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북경에서 남경까지 경공으로 하루만에 내달리고, 10만 대군을 장력 하나로 몰살시키고, 황제가 몸소 나서 황실 비전의 권법으로 오랑캐를 토벌한다는 둥, 그야말로 온갖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신무협은 이러한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았다. 무술에 대해서도 지리에 대해서도 인물에 대해서도 역사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고증했다. 양우생이 말한대로 "'무'는 '협'을 실천하는 수단이다"라는 말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말을 청산유수 늘어놓으니 신무협을 쭉 꿰찬 것처럼 보인다. 허나 정말 쪽팔리게도, 나는 90년대 당시에 신무협 소설을 거의 접해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하이텔 모 게시판에서 대표적인 신무협 작가 좌백의 패로디 무협지를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패로디 소설은 정말 엄청난 물건이었다. 매 페이지마다 배꼽을 잡고 웃게 되었으니 내 머릿속에는 좌백의 이름이 낙인 찍히듯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동안 무협지를 등한시 했던 나 자신을 징벌하는 동시에,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아, 신무협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손에 잡은 것은 좌백의 [혈기린외전]이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일지어니 그만큼 웃기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진지한 글도 잘 쓰는 법이다.
과연 예상은 틀림이 없었으니 [혈기린외전]은 가히 한국 무협 사상에 남을만한 작품이었다. 단, 2부까지만 그렇다.

1부 '협객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에선, 남만 정벌군에서 갓 전역한 무림 소졸 왕일이 가족의 원한을 갚기 위해 도적들을 상대로 모골 송연한 복수극을 펼친다. 그는 자신의 무술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온갖 비겁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끝내 원한을 갚고야 만다.
2부 '협객은 신의를 잃지 않는다'에서 왕일은 군호맹의 하급 무사가 된다. 그런데 무림의 양대 산맥인 군호맹과 제룡련 사이에 대충돌이 일어나면서, 왕일에겐 남만으로 내려가 군호맹의 최고 고수 '혈기린'을 모셔오는 임무가 부여된다. 중원에서 남만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무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는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내려간다.
여기까진 정말 좋았다. 좌백은 왕일와 마달을 비롯한 밑바닥 인간들을 생생하게 그려냈고, 무공과 암기와 병기와 독공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이 묘사했다. 그것은 이전까지의 한국 무협에선 발견할 수 없던 미덕이었다.

헌데 3부 '협객은 의를 버리지 않는다'에서 모든 미덕은 실종되어 버린다. 기이한 인연을 얻어 무명 소졸에서 절대 강자로 변신한 주인공의 약속된 승리, 아리따운 여인과의 뻔한 로맨스, 시시껄렁한 해피 엔딩이 순서대로 이어질 뿐이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되는 건지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이럴 바에야 앞의 1, 2부는 대체 뭣 때문에 존재했던 것이냔 말이다.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에서 한국 무협작가 금강은 신무협 작가들이 '책을 내기 위해 고심하다가 스스로 주저앉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보다는 '이미 완성된 무협지의 틀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주저앉았다'고 말하는 편이 좋으리라.
80년대 한국 세로줄 무협지의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은 '초라한 하급 무인이 기이한 인연을 만나 절대 강자로 부상하고, 막강한 정력(혹은 연애력)을 발휘하여 삼처사첩을 거느리고, 자신에게 덤벼드는 사악한 도전자들을 차례로 물리쳐 무림을 평정하고 영웅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는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 황당무계하고 다시 보면 식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일반 대중의 입맛을 낱낱이 분석한 끝에 완성된 공식이다. 기존의 공식을 따르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지언정 실패하진 않는다. 새로운 공식을 만드는 시도는 대성공을 거두거나 무시당하거나, 둘 중 하나다. 당연하게도 후자의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좌백, 진산을 비롯한 신무협 작가들은 수많은 고민과 도전 끝에 신천지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부지런히 땅을 갈아 씨앗을 심어 싹을 틔워 꽃을 피웠으나, 불행히도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그렇다 하여 떠나온 땅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새로운 공식을 만들고자 했으나 상업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 이것이 신무협의 비극이었다.
신무협의 대표적 작가인 좌백이 [혈기린외전] 3부에서 기존 무협의 공식으로 회귀한 것은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선택이었으니 차라리 가던 길을 고집하느니만 못했다.

허나 좌백의 [혈기린외전]이 한국 무협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환협지로 대표되는 시대의 유행을 타기엔 조금 낡았고 고전이 되기엔 너무 이르지만, 지금 읽는다 해서 손해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협지를 비롯한 대중 소설이 지녀야 할 덕목 - 즉 오락물로써의 재미 - 은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3부도 1, 2부처럼 나갔다면 오락성에 작품성까지 겸비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추가 : [혈기린외전]은 만화로도 나왔는데 1권 사보고는 포기했다. 이만한 원작을 가지고 그따위 작품을 그려내니, 한국 만화는 망해 마땅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도리밖에 없다. 하늘이여, 부디 나를 용서해 주소서!
2004/06/16 23:23 2004/06/16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