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본 동북 대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한다. 국적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 같은 지구인이니까.

당면의 문제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후쿠시마의 원전이다. 쓰나미로 인해 비상 발전기가 박살나는 바람에 폭주하기 시작한 원전은지금 이 순간에도 후쿠시마 인근에 치명적인 방사능을 뿌리고 있다. 도쿄 전력, 원전 공급업체, 일본 자위대, 소방청 등등에서 많은 인력이 파견되어 방사능을 뒤집어 써 가면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끝에 사건은 다행히 어느 정도 수습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원전의 안정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책임을 거의 독박으로 뒤집어 쓴 것은 후쿠시마 원전의 경영 주체인 도쿄 전력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망할 놈들이 초기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전혀 엉뚱한 데 불똥을 튀겼으니, 그건 일본의 [주간 만화 고라쿠]에 연재되던 만화 [백룡 레전드(Legend)]다.
[백룡 레전드]는 일종의 야쿠자 만화로, 최근 새로운 에피소드 [원자력 마피아] 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돈과 권력을 휘두르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 온갖 비리를 일삼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을 상대로 하는 에피소드 같은데 - 여기 나오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이 도쿄전력(東京電力)이란 건 누구든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불행히도 이 에피소드는 3월 18일 잡지에 실린 것을 끝으로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실제로 일어난 원전 사고에 편승한다는 부담을 뒤집어 쓸까봐 겁이 났던 건지, 아니면 도쿄 전력에서 압력이 들어온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른다.

연재중단이 발표된 직후, 일본의 투채널 등에선 이 만화의 최신 에피소드가 퍼지면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만화일지 궁금해서 찾아 봤는데 - 과연 여러 가지 의미로 오싹해지는 만화였다.
이런 건 나 혼자 보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대충 발번역을 붙여 올리기로 했다. 저작권은 존중해 줘야겠지만, 만화책 전체도 아닌 잡지 1회 연재 분량이라면 - 작가도 너그럽게 용서해 줄 것이라 믿는다.

[백룡 레전드 - 원자력 마피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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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너희들은 원전의 현실을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주인공 (?) : "원전의 현실....?"
안경 : "원전의 내부에선.... 매스컴에 발표되지 않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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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런 걸 전부 다..... 돈과 권력으로 덮어버리는 게 동도전력의 습성이다!"
숨어보는 자 : "미츠모토(아마도 안경) 녀석, 뭘 말할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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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 : "원전이란 게 그렇게 사고가 많은 거야?"
안경 : "원전이란 건, 원자로나 터빈은 두말할 것도 없고 - 그걸 작동시키기 위해 수십만개의 파이프가 사용되고 있어. 말하자면..... 원전은 배관으로 이뤄진 발전 시스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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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만일 주요 배관이 날아가 버리면..... 체르노빌 급의 원전사고가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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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 중요한 배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고 있어?"
모히칸 : "그, 그야 당연히 중요한 배관이니까 최고 기술자를 써서 만들겠지."
안경 :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모히칸 : "아, 아니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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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원전의 배관기술은 화학 플랜트에 비하면 15년은 뒤처져 있어!"
안경 : "이를테면 화학 플랜트에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1960년대에 폐지된 공법을 원전에선 최신 공법이라고 오해해서 1980년대에 채용하기도 했지."
일동 : "에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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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게다가 공사현장은 날림 투성이야!"
안경 :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건, 대형 원자로 메이커가 수주받은 배관공사를 하청에 재하청으로 돌리는 거지."
안경 : "그 주정뱅이가 말한 대로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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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 "원전이라는 데는 다중구조로 된 하청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고!" (회상 씬)
안경 : "배관공에겐 동도전력에서 하루 7만엔의 일당이 나오지. 그러나 하청으로 돌릴 때마다 조금씩 뜯겨서.... 현장의 작업원에게 건네지는 일당은 8천엔에서 7천엔까지 내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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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 : "7천엔?"
뽀글머리 : "10분의 1이잖아! 심하다.... 야쿠자도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
안경 : "그 돈으로 제대로 된 기술자를 고용할 수 있을 리 없어! 당연히 현장에서 배관을 하는 작업원은 주변의 농부나 어부 아저씨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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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 (아연실색)
안경 : "게다가.... 아무 자격도 없는 작업원에게 용접공의 위조 면허를 주기도 하지."
뽀글머리 : "뭐, 뭐라고?"
안경 : "취재 과정에서 성명이 기입되지 않은 백지 자격증명서를 몇 장이나 발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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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머리 : "심하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공사가 되겠어?"
안경 : "될 리가 없지!"
안경 : "이를테면 용접 도중에서 파이프에 작은 구멍이 뚫릴 때가 있어. 그런 구멍은 배관이 깨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파괴검사를 해서 구멍의 유무를 체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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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검사는 주로 컬러 검사 방법을 써. 먼저 빨간 침투액을 파이프에 칠하고.... 그 위에 하얀 스프레이를 뿌리지. 깨진 데가 있으면 그 흔적이.... 떠오르게 돼!"
안경 : "하지만 구멍이 나거나 깨진 파이프를 몇 번이나 수리해도 컬러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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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래선 공사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때 현장에선 먼저 하얀 스프레이를 칠하지. 그러면 침투액을 칠해도 깨진 부분이 떠오르지 않아서 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 거야."
뽀글머리 : "말도 안 돼! 그건 눈속임이잖아!"
안경 : "그건 그나마 나은 편이야..... 겨우 2미터의 파이프를 연결하는데 5센티미터나 벌어지는 바람에 연결할 수 없을 때도 있지. 그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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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3톤 급의 체인 블록을 몇 개나 파이프에 걸어서 잡아당겨 억지로 연결시키지!"
뽀글머리 : "그, 그런 짓을 계속하다간 어떻게 되는 거지....?"
안경 : "파이프에는 항상 원래대로 돌아오려고 하는 압력이 걸리게 되겠지....."
안경 :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파열할 수도 있어! 혹시 그게 주요 배관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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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체르노빌의 재연이 된다!"
모히칸 : "그,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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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 : "너 이미 엄청난 꺼리를 물었잖아!"
뽀글머리 : "맞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특종감이야!"
안경 : "아니, 아직이야...... 동도전력은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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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훨씬 더 깊은 어둠을 껴안고 있다!"
주인공 (?) : "그.... 어둠이란 게 뭐지?!"

 - 계속 -

....아마 다음 편에는 동도전력의 거대한 어둠과 맞서 싸우는 야쿠자들의 활약이 그려질 예정이었을 것이다. 에피소드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는 바람에 이 뒤를 볼 수 없게 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어쨌든 여기 나오는 원전 이야기는 굉장히 설득력이 높다. 어느 정도 과장은 섞여 있겠지만 실제로 취재한 사실에 입각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읽다 보면 오싹해질 지경이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 해서 그 오싹함의 강도가 덜하거나 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을 주고, 눈속임을 일삼는 건 - 우리나라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테니까!
2011/03/20 20:31 2011/03/20 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