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의 의미?

잡담 | 2004/06/11 16:16 | djhan
아이디의 의미가 뭔지 묻는 트랙백을 발견했다.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또한 쓸데없는 발상이다.

사흘 밤낮 고민 때리다가 졸음을 견디지 못해 비몽사몽 꿈나라 문턱을 넘나들던 와중에 난데없는 천둥벼락에 깜짝 놀라 눈을 뜨니, 하늘에서 거룩한 목소리로 계시를 내리시어 그에 따라 아이디를 지었노라 말한다면 이 얼마나 장쾌하고 멋들어진 이야기겠는가.
하지만 자기 아이디 만드는데 사흘 밤낮은 고사하고 5분 이상 고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궁금할 따름이다. 나? 나 역시 5분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따위에 고민할 시간 있으면 술이나 먹겠다.

91년도 하이텔에 가입하면서 최초로 만든 아이디는 DJtoU였다. 처음엔 당시의 유행을 따라 DJ2U나 DJ4U로 할까 했는데, 영자와 숫자가 섞이면 아무래도 타이핑하기 귀찮다. 그래서 DJforU와 DJtoU 중에서 글자 수가 적은 DJtoU를 선택했다. 믿거나, 말거나.
천리안 및 맥 커뮤니티에선 fuckpc란 아이디를 사용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맥유저의 끈기와 인내를 천하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

한글 아이디 시대에는 '파란만장'이란 아이디를, 인터넷이 범람하면서부터는 djhan이란 아이디를 애용했다. 치기도 쉽고 쓰기도 쉽고 두루두루 좋은 아이디 아닌가. 누군가 djhan 아이디를 선점한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fuckpc와 ekkamuth와 shakamuth란 아이디를 사용했다. 에카무드와 샤카무트의 의미를 묻는 자, 진정한 나의 정체를 모르는 자일지어다.

아이디는 다른 사람과 나를 차별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부여받은 성씨나 이름과는 달리, 자기 자신이 자유롭게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호'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남들이 보기 좋고 자신이 쓰기 좋다면 그만이다. 아이디의 의미야 자기 자신만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고 쓰기도 어려운데다, 그 유래와 의미를 구질구질하게 설명해야 하는 아이디는 결코 좋은 아이디가 아니다.
2004/06/11 16:16 2004/06/11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