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해 7월 보름, 칼잡이의 행동거지는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 날은 벚꽃임금의 즉위 3년째(三年)를 기념해 성대한 불꽃놀이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미 닷새 전부터 큰 축제가 열려 거리마다 사람들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니(人山人海), 이쪽에선 풍악소리 요란하고 저쪽에선 씨름판이 벌어지고 딴쪽에선 사당패가 놀아났다.
불꽃놀이 당일이 되자 축제는 가히 절정에 이르렀다. 술시(戌時:저녁 7시)에나 불꽃을 쏘아 올리건만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니 저잣거리가 숫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이 놀이는 간사하고 흉악한 외척의 우두머리 오른뿔한(右角干:右議政) 날범(驍虎)이 제안한 것이니, 내세우는 말인즉슨 즐거운 축제로 사람들을 위무하고 현란한 불꽃으로 혼란을 날린다 함이었다.
그러나 축제의 기쁨은 찰나일 뿐이요, 불꽃을 쏜들 어찌 혼란이 가시겠는가? 속내를 따져보면 어리석은 대중을 속이고 어린 임금의 눈을 가리고 나이든 태후에게 아첨하겠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이따위 놀이판을 벌이느라 탕진할 금은(金銀)이 있다면 마땅히 나라의 큰일(大事)에 돌려야 옳지 않겠는가?
그런즉슨 간만에 활기차게 돌아가는 서울 시내를 보면서도 마음 속에선 불쾌함이 솟아났다. 집에 앉아 글이나 쓸까 했지만 큰길가의 시끄러운 소리(騷音) 때문에 짜증만 더했다. 아침이면 문방구(文房具)를 들고나와 꾀꼬리 술집에 틀어박히고 밤 늦게 집에 돌아가는 날이 되풀이되었다.
다행히 꾀꼬리 술집 부근은 칼차고 다니는 협객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함부로 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없어 사방이 조용했다. 세끼 밥을 맛나게 챙겨먹고 밤에는 한잔 술을 들이키며 복잡한 머리를 깨끗이 씻을 수도 있었다. 협객들도 내 글쓰기를 방해하지 않았다. 힘을 쓰고 칼을 쓰는 이들에게 글쓰기(作文)는 멸시의 대상이면서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글쟁이가 협객을 낯춰 보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와 통하는 바였다.
헌데 그날 미시에서 1각(오후 1시 15분)이 지날 즈음에 갑자기 칼잡이가 술집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술집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 낮술을 먹던 사람들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칼잡이가 오지 않는 날은 있었지만 이 시간에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 놀랄만한 일은 그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칼잡이는 술집 안을 쓰윽 훑어보더니 나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나는 탁자에 펼친 두루마리(電券:PDA)를 붓(電筆:Stylus)으로 톡톡 두들기며 문장을 다듬는데 골몰하여 칼잡이가 들어온 사실도, 내게 다가온 사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부루형(火兄), 글을 하나 부탁하고 싶습니다."
나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이 시간에 칼잡이를 보는 것만도 놀라운 일일진대 글까지 닦아달라 청할 줄이야 꿈에선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람들은 둘도 없는 구경거리를 놓칠새랴 삼삼오오 모여들어 우리 주변을 담장치듯 에워싸 눈을 부릅뜨고 귀를 세웠다.
칼잡이는 주위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앞에 단정히 앉아 머리숙여 인사하며 앞서의 말을 되풀이했다.
"부루형, 글 하나를 청하는 바이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생각해보면 그닥 놀랄 일은 아니었다. 칼잡이도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이 시간에 술집에 온다한들 무에 그리 신기하며 내게 글을 청한들 무에 그리 유별나냔 말이다.
"저를 형이라 높이며 글을 청하시니 제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허나 제게 형이라는 무거운 칭호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한 글재주가 높지 않고 아는 것도 없는지라 칼잡이형(劍客兄)이 바라는 바에 미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아닙니다. 부루형은 할 수 있습니다. 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는 품에서 한권의 두루마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붓질을 애타게 기다리는 순결하고 깨끗한 화면(畵面)이 탁자 위에 넓게 펼쳐졌다. 이젠 더이상 피할 구실도 명분도 없었다. 나는 내 두루마리를 갈음하고 붓을 고쳐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부탁하니 저도 더이상 피할 수가 없군요. 어떤 글을 써 드리면 되겠습니까?"
어차피 협객들이 닦아달라 하는 글이야 뻔했다. 아리따운 여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戀文)거나, 엄한 관청에 급히 낼 서류가 아니면, 초라한 자신을 한껏 부풀리기 위한 자화자찬의 문장이었다. 이미 머릿속에선 그에 맞는 글들이 줄줄이 떠올라 언제든 써내릴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칼잡이가 입을 여는 순간, 술집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동안 오른뿔한 날범이 저지른 나쁜짓(惡行)을 묻고 죄값을 치를 것을 요구하는 글을 닦아 주십시오."
방금 전과 다름없이 담담한 목소리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방금 전과 다름없이 당당한 몸가짐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했다. 방금 전과 다름없이 영롱한 눈빛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은 썩은 동태 눈깔처럼 풀려버렸다.
나 역시 머리가 멍해지고 손발이 떨려 들고 있던 붓을 떨어뜨릴 뻔 했다. 뭔가 잘못 들었겠거니 싶어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로 웃음기를 띄웠다.
"칼잡이형, 말이 지나치십니다. 아무리 농담일지라도 관부에서 그 말을 들었다간 난리가 날겁니다. 이제 그만 진짜 볼일을 말씀해 주시죠."
"농담이 아닙니다, 부루형. 제 바램은 오른뿔한 날범을 엄히 꾸짖는 글입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붓을 놓쳤다. 온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발치에 떨어진 붓이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요란했다. 침넘어가는 소리는 우레처럼 울렸다.
"그런 글을 닦아서 어디 쓰시려는 겝니까?"
"거리 곳곳에 붙여 모든 사람들(萬人)에게 날범의 죄를 알리려 합니다. 불꽃놀이 전에 붙여야 하니 급히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꾀꼬리 술집은 침묵의 태풍에 휘말려 적막함 속으로 침몰해 버렸다. 종업원이고 손님이고 입을 쩍 벌린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직 나만이 이 곤란하고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필사적으로 더듬댔다.
"아니, 아니, 그건, 저, 그게 말씀입니다...... 정말이지,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일이로군요..... 그, 뭐랄까..... 저같이 하찮은 사람이 어찌 그런 무거운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칼잡이는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그다지 실망한 표정도 아니었다. 다만,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텅 빈 종잇장(白紙)과도 같은 투명함 속에 한가닥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글쟁이(文人)와 선비(文士)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부루형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군요."
물흐르듯 막힘없고 바위처럼 침착한 말투 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감춰져 있었다. 일찌감치 몸을 움츠려 피하는게 옳건만, 나는 막연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손가락으로 가시 끝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이르기를, 선비(文士)라는 무리는 그 입으로는 천명의 군인과 만필의 말(千軍萬馬)을 상대하지만 막상 그 손으로는 버드나무 가지 하나 꺾지 못하는 겁쟁이(白面書生)라 합니다. 무겁고 힘든 일이 있으면 외면하고 급하고 위험한 일이 닥치면 도망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쟁이란 무리는 거침없는 말과 아름다운 글로 힘 있고 돈 있는 자에게 아첨하며,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百姓)에겐 글 한 줄 말 한 마디도 아낀다 합니다. 그래서야 제아무리 배운 게 많고 아는 게 높은들 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평소 부루형은 나라를 걱정하고 인민을 심려하고 임금님을 사모한다 말하기에 속된 선비들과 다르리라 여겼습니다만, 이제 보니 죄다 술에 취해 떠든 빈소리(虛言)였군요."
칼잡이의 낯빛은 흥분하지 않았으며 눈빛엔 멸시가 섞이지도 않았고 입가에 경멸이 담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쇠꼬챙이처럼 가슴 깊숙이를 후벼팠다. 내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눈은 땅으로 떨어졌고 입은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힘과 돈(金權)에 빌붙는 속된 글쟁이가 아니었고 그리 될 생각을 품은 적도 없었다. 부끄러움 다음에 오기(傲氣)가 일어나고 창피함 다음엔 혈기(血氣)가 치솟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두루마리를 마는 칼잡이의 손을 붙잡았다. 손끝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피가 흐르는 혈관이, 코끝에는 칠흙같은 어둠에 잠긴 눈동자가 다가왔다. 그러나 내 몸을 달구는 뜨거운 피는 그의 차가움을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칼잡이형, 제가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님을 사모하고 인민을 근심하는 마음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날범과 그 무리가 저지른 왼갖 악행을 미워하는 마음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허나 그 마음을 글로써 세상에 알리는데 잠시 두려워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한바퀴 둘러봤다.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잔뜩 굳은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칼잡이는 이미 내 뜻을 짐작했다는 듯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진정한 협객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합니다. 선비나 글쟁이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글쟁이는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글을 짓기 때문입니다. 칼잡이 형이 글을 청한 뜻은 나라를 위하고 인민을 위하고 임금을 위함이니 이는 제 믿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글을 닦아드리지 않겠습니까? 어찌 진정한 글쟁이가 될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사나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습니까?"
놀라움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고 박수를 치는 사람이 있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었다. 칼잡이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사죄했다.
"감히 형을 속된 무리들과 비교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부루형. 사과의 뜻으로 술 한잔을 올리니 사양치 말고 받아주십시오."
그가 손가락을 튕겨 신호를 보내기가 무섭게 배씨 노인이 주방에서 술동이를 내왔다. 칼잡이가 사발 가득 따라주는 술을 사양치 않고 단숨에 마신 다음, 붓을 들어 푸르스름한 화면(畵面) 위에 신들린듯 써내리기 시작했다.

 - 북으로 키타이(契丹:거란)를 토벌하고 남으로 왜구를 정벌해 온나라(全國)를 평온케 한 스물세번째 큰임금(二十三代皇帝) 무레임금(武雷大帝)께서 세상을 뜨신지 어느덧 세 해가 지났으나 높으신 위엄과 덕이야 어찌 잊혀지랴. 입으로는 백년을 가고 글로는 천년을 가리라.
무레임금께선 첫째 부인이신 임별황후(壬星皇后)와의 사이에서 오로지 딸 하나만을 보셨으니 그분이 바로 지금의 벚꽃임금이라. 임금님(先帝)이 칼을 잡고 큰싸움(戰爭)을 치룰 때 임별황후는 어질고 큰 마음으로 불안한 인민들의 마음을 다독이셨으니, 그로써 나라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불행히도 아홉해 전 임별황후께선 큰 병을 이기지 못해 서른다섯 짧은 삶을 접으셨으나 넓고도 다정한 마음이야 어찌 잊혀지랴. 말로 전해져 백년을 가고 책으로 엮어져 천년을 가리라. 지금은 한씨모태후(韓氏母太后)로 높이 모셔져 무레큰임금과 한 사당에 모셔졌으니 두 분께 향 사르는 냄새가 끊일 날이 없구나.
홀로 남은 벚꽃임금께선 비록 무레임금(先帝)의 무용(武勇)을 계승하진 못했다 하나 임별황후의 고운 마음을 이어 받았으니 이는 불쌍한 인민들의 크나큰 복(福)이다. 무레임금과 임별황후의 무거운 은혜를 받은 서울의 귀족(貴族)들과 지방의 공후(公侯)는 힘을 합쳐 제실(帝室)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야 할 것이며, 두터운 은덕을 입은 벼슬아치(官吏)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하리라.
그런데 임별황후께서  돌아가신 직후 여러 신하(衆臣)가 뜻을 모아 무레임금께 새 황후를 울 것을 권하니, 그분이 바로 유리황후(璃皇后)요 지금의 밝씨태후(明氏太后)다. 새 황후의 어질고 착하심은 임별황후와 다르지 않으니 이 또한 나라의 복이라며 뭇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했다.
밝씨는 나라에 세운 공이 많고 덕이 높은 집안답게 태후께서 어린 큰임금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데 사사로운 마음(私心) 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받들어야 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태후의 눈을 밝혀드려야 했으며 미처 인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를 열어드려야 했으며 사람들을 보듬기에 모자란 손을 늘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해선 아니됐다.
그런데 어떠한가?
오른뿔한의 자리에 오른 밝씨의 우두머리(首將) 날범은 태후의 눈과 귀가 어두운 틈을 타 나랏살림을 농락하고 있다. 나이 예순이 되도록 쌓은 공(功績)은 콩깍지 만한데  사사로운 이득을 챙기는 욕심(私利私慾)은 바다와도 같으니, 나라의 창고는 날범의 창고요 나라의 땅은 날범의 땅이요 나라의 돈은 날범의 돈이 되었다.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그만큼이나 귀한 자리에 올랐으면 나라를 위해 몸이 바숴지도록 일해야 옳은 법이다. 헌데 나이어린 임금을 제멋대로 다루고(左之右之) 덕높은 대신을 모함하고 나이든 태후에게 아첨함을 자랑으로 여기니 이는 참으로 깊이 곪은 종기로다. 지각있는 대신들이 나랏일을 바로하고자 애쓰면 도와주긴커녕 훼방만 놓으니 이는 참으로 뼛속까지 파고든 병이다.
뿐이랴, 날범이 손발처럼 여기는 심복(心腹)들은 크게는 나라를 어지럽히고 작게는 인민들을 괴롭힌다. 어진 공후(公侯)를 모독하고 이름있는 귀족을 멸시하고 착한 인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며 자유를 핍박하길 서슴치 않는다.
이렇듯 날범의 농간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니 범이나 늑대같은 이웃나라들이 군침을 흘리고 크고작은 제후(諸侯)가 제실(帝室)을 우습게 여기고 힘있는 귀족들이 조정에 등을 돌린다. 어질고 재주있는 선비들이 관직(官職)에서 밀려나 산으로 쫓겨나고 충성된 지킴이(武人)들은 쓰일 데 없이 들판에 팽개쳐진다.
이제 오른뿔한 날범의 두 글자 더러운 이름은 온나라 가득 썩은내(惡臭)를 풍기고 덕과 이름이 한 가지로 높았던 밝씨족의 한 글자 이름은 땅에 떨어졌다. 머리 있는 사람 둘이 모이면 그를 욕하는 소리가 십리를 가고 열이 모이면 하늘을 찌른다.
날범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죄가 무거움을 깨닫고 어린 임금과 나이든 태후의 눈과 귀를 가리는 짓을 그만두고, 씨족의 밝은 이름에 먹칠하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 스스로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안다면 스스로의 재산과 목숨을 보전하는데 어려움은 없으리라.
그러나 물러나지 않고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는데 골몰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면 그 누가 참을 수 있으랴? 정의로운 협객들과 뜻있는 선비들이 머리를 모으고 힘을 합치면 그 기세는 하늘을 가르고 산을 무너뜨릴 것인즉, 보잘것없는 재산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요 귀한 목숨도 온전치 못하리라.
날범은 하루속히 그 자리를 어진 이에게 물려주고 욕된 이름의 썩은내가 사라질 때까지 고향에 내려가 몸을 감추기(隱身) 바란다. 이는 나라와 임금과 인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할 일이요 하늘의 뜻이기도 하니, 어찌 그릇됨이 있으랴?
벚꽃임금 3년 7월 보름, 해씨족(日氏族)의 36대손 부루(火)가 온나라 사람들(人民)에게 고하다-

2009/02/27 16:11 2009/02/27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