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리고 MP3

하드웨어 | 2005/05/05 18:09 | djhan
서울의 고려 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을 짓는데 삼성이 100억을 쾌척했다고 한다.
삼성 재단이 성균관 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먹은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나야 이렇게 말하지만 성균관 대학교 학생들은 얼마나 속이 끓을까?

고려대의 늙다리 교수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려고 했다.
경제학도 아닌 철학이 왠 말이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나야 이렇게 말하지만 철학 교수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학위를 타려 가는데 길을 막은 학생들과 몸싸움이 난 모양이다.
보수 언론은 신이 나서 학생들을 꾸짖고 교수들은 스스로 직위를 내놓으며 몸을 사렸고 당사자는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이해한다'며 배포유한 척 한다. 그 사람에게 정녕 하늘처럼 넓은 배포가 있었다면, 부득불 학생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대신에 싱긋 웃으며 '거 갑갑한 친구들이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 러시아와 수교를 맺으며 시장 개척의 바람이 광풍처럼 몰아쳤을 무렵, 대우 그룹 회장 김우중이 모스크바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엄청나게 맛있는 대구탕을 대접받고서는 깜짝 놀라 직원들을 다그쳤다고 한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여태껏 취급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
그리하여 대우 그룹은 러시아에서 대구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미 대구를 수입하던 중소기업들이 적잖게 있었지만, 그들은 대기업의 자금력 앞에서 한물 간 복서처럼 비실대며 나자빠졌다.

몇년 뒤, 대우 그룹은 허무하게 침몰해 버렸다. 맨주먹의 월급쟁이로 시작해 세계적 그룹을 일군 김우중은 초라한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우리 아버님을 위시한 '김우중 추종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대우 그룹의 몰락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음모'였고, 김우중은 '희생자'였다고 한다. 제 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그건 진짜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말 한마디로 생선 수입같은 하찮은 일에 국제적 기업의 여력을 쏟아붓게 만든 최고 회장의 독선과 아집, 그런 것조차 만류하지 못하는 경영진의 무능함과 나태함이 쌓이고 쌓인 끝에 대우의 몰락을 자초한 것이다!

오늘날 삼성은 국내 최고, 최대의 그룹이다.
얼마 전부터인가, 삼성은 중소기업의 전유물인 MP3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노라고 신문지상에서 요란하게 떠벌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엄포로 그치지 않고 대폭적인 가격 인하라는 실질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미 국내와 세계 MP3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MP3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이재용에게 그럴싸한 실적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라는 소문을 뒤로 흘리면서 삼성은 1등의 고지를 향해 미친듯이 내달리고 있다. 뜯어말리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몇년 뒤에 삼성이 어찌 될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하기사 뭐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삼성 직원도 아니고, 하청업체 직원도 아니고, 삼성 주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별 수 없는 거지, 뭐.
2005/05/05 18:09 2005/05/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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