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WWDC에서 애플은 사파리 3.0 베타 버전을 발표했다. MacOS뿐만이 아니라 Windows XP/Vista도 지원할 거라는 충격적인 설명을 덧붙여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Web 2.0시대의 개막과 동시에 애플이 웹브라우저 시장에 다시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고. 숨죽이고 있던 애플이 다시 머리를 치켜세우고 본격적으로 MS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MacOS의 한계를 넘어 윈도우를 공략하기 시작했다고. 이제 곧 IE와 파이어폭스, 사파리와 오페라가 뒤엉켜 웹브라우저 시장을 놓고 한바탕 혈전을 벌일 것이라고.

이 장대하고 원대한 예측들에 대한 반박은 단 한마디로 충분하다: "말도 안 돼!"

IE와 Netscape의 싸움에서 넷스케이프가 철저하게 몰락한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제아무리 어리석고 무능한 경영진이라 할지라도 Windows용 웹브라우저 시장의 절대 강자가 MS의 IE란 사실을 모를 턱이 없다. Windows 플랫폼에서 Windows에 가장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MS이고, Windows 플랫폼에서 경쟁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짓밟을 수 있는 회사 역시 MS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에서 Firefox가 나름대로 선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1)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포기하지 않는 헌신적인 개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2) 무슨 이유에서인지 MS가 IE의 버전 업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3) Windows 외에 Linux와 MacOS등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Windows 시장에서의 약진은 2)번, 즉 MS의 삽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Opera는 또 다른 경우다. Opera는 Windows 플랫폼보다는 휴대폰 등 모바일 플랫폼에서 실질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로 말하자면, 야심차게 내놓은 사이버독(CyberDog)으로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배터질 정도로 물먹은 경험이 있다. 그 결과, 자신들이 만든 맥 플랫폼에서조차 쓸만한 웹브라우저를 확보하지 못해, MS를 찾아가 맥용 IE를 만들어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다. 절치부심의 나날을 보낸 끝에 KHTML 엔진을 개량해 웹키트 엔진을 만들고 사파리(Safari)를 내놓은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과연 Windows 플랫폼의 웹브라우저 전쟁에 끼어들 여력이 있을까? 없다고 보는 편이 좋다.

사파리의 웹키트 엔진의 렌더링 성능은 Firefox의 Gecko 엔진 못지 않다. 렌더링 속도도 빠르고, 자바 스크립트 실행 속도도 빠르고, 호환성도 괜찮은 편이다. CSS 2도 현재는 완벽하게 지원된다. 하지만 Firefox처럼 다양한 extension이 나와 있진 않다. IE처럼 ActiveX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Opera처럼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세세한 기능으로 무장하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오늘 막 나온, 따끈따끈한 Windows 버전은, 베타라기보다는 알파 버전에 가깝다. 이런 걸로 브라우저 전쟁을 벌이겠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현재, Windows용 사파리를 설치한 대한민국 블로거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쏟아지는 불평불만은 한글 페이지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세계 언어를 정확하게 렌더링해야 하는 웹브라우저의 특성상, 이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버그다. 헌데 당혹스러운 것은, Locale을 영문으로 맞춘 영문 윈도우즈에서 사파리를 실행시켜 한국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한글이 제대로 표시된다는 사실이다.
만일 애플 코리아 직원이 테스트를 해 봤다면 이 정도의 버그는 금방 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버그가 잡히지 않은채 배포되고 있다는 사실은, 애플 본사에서 엄밀한 QA 과정을 생략하고 서둘러 Windows 버전을 내놓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잘 봐줘도 베타라기보다는 알파 버전에 가까운, 불완전한 상태의 소프트웨어를 서둘러 공개한 이유가 뭘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아이폰 때문이다.

WWDC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에서 써드파티 개발자들이 만든 Web 2.0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킬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폰의 OS는 MacOS X이고, HTML+Ajax 실행 환경은 Webkit 엔진이다. 즉, 사파리의 렌더링 엔진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하지만 WWDC에서 애플은 아이폰용 SDK를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즉, 써드파티 개발자가 아이폰용 Web 2.0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면 사파리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폰은 6월 29일에 출시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면 서두는 것이 당연지사.

요컨대 지금의 사파리는 웹브라우저 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라, 아이폰 개발자들을 위한 테스트용 어플리케이션이라고 보는 게 옳다.
단, 사파리의 역할이 거기서 끝날 거라고 장담하기엔 너무 이르다.
Windows 버전의 사파리에선 MacOS와 동일한 수준의 미려한 폰트 앤티앨리어싱을 맛볼 수 있다. 인터페이스 반응 속도와 렌더링 속도는 MacOS 버전의 사파리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쾌적하다. 그리고 Program Files 안의 Safari 폴더를 열어보면 corefoundation.dll과 coreanimation.dll이 눈에 띈다. MacOS X의 핵심 기술 일부가 사파리와 함께 Windows 용으로 포팅된 것이다. 조만간 Windows 용 iTunes는 WebKit 엔진으로 애플 스토어 사이트를 렌더링하고, 포팅된 CoreAnimation 기술로 커버 플로우 애니메이션을 표시하게 될 것이다. 체감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아이폰의 보급과 함께 사파리 사용자가 늘어나고, Windows 환경에서의 개발자가 더불어 늘어나게 된다면, 영미권 사이트들이 사파리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맥유저들에겐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없는 일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현재의 Windows용 사파리는 베타가 아닌 알파 버전 수준의 불완전품이다. 머나먼 미래의 가능성은 지나친 사치다. 지금 당장은 한글 윈도우즈에서 제대로 한글이 보이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플 코리아가 얼마나 기민하게, 얼마나 절실하게 애플 본사에 버그 리포팅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나는 애플 코리아에서 아무것도 안 할 거라는 데 피같은 돈 만 원을 걸겠다!
2007/06/12 19:17 2007/06/12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