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로는 너무 길어서 트랙백으로

한국 만화시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군요. 사실 만화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 필요는 없습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업계도 경제학 이론대로 깨끗하게 돌아가진 않습니다. 만화판이 다른 판에 비해 지독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판보단 낫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특정 제품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뿐, 소비자가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은 '안 팔리는 제품'을 만든 회사가 온전히 짊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만화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만화가 안 팔리는 이유는 독자가 읽을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책임의 일차적인 원인은 당연히 '안 팔리는 만화'를 그린 만화가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우리나라 만화가들은 '자기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리면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줄로 착각하고 있더군요.

'자기가 그리고 싶은 만화'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화' 는 비슷해 뵈는 말이지만, 그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합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으며 만족할 수 있는, 예술로써 승화된 만화를 그리고 싶다면, 그걸로 돈 벌 생각은 애초에 때려치워야 마땅합니다. 헌데 예술적인 만족과 더불어 상업적인 성공까지 바란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망상에 불과합니다.
가끔 가다 '자기가 그리고 싶은 만화'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화'가 묘하게 일치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천에 하나 정도 있을까 말까한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누구나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란 희망은 일찌감치 접는 편이 좋습니다.

요즘 한참 줏가를 올리고 있는 박인권의 [대물]은 진지한 만화 독자들에겐 쓰레기 취급 당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오늘날 시장에서 잘 팔리는 건 그런 종류의, 1분만에 쓰윽 읽고 잊어버릴 수 있는, 1회성 오락물로써의 만화입니다. 사소한데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돈만 벌겠다면 김성모나 박인권의 뒤를 따르십시오. 돈 안 되는 예술작품일랑 내동댕이치고, 상업주의에 물든 공장장이란 욕을 먹건, 쓰레기같은 만화가로 낙인찍히건, 그런건 신경 끊고 대중들이 원하는 쓰레기를 그리란 말입니다.

평범한 월급쟁이도 명예퇴직이니, 정리해고니 하는 구실 하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별볼일 없는 신세로 전락하는게 요즘 세상입니다. 그게 바로 냉혹하고 비정한 자본의 논리입니다. 왜 만화가만 여기서 비껴나야 한단 말입니까? 예술가라서? 그들은 예술가이긴 하지만, 대중들을 상대로 자신의 작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상업예술가들입니다.

예술을 하고 싶다면 백성민 화백이나 이두호 화백처럼 굶어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이를 앙다물고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란 말입니다. 여기서 잠깐, 작년에 백성민 화백을 만났을 당시의 대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나 : "요즘은 어떤 작품을 그리세요?"
백 : "아, 내가 예수쟁이라서 말야. 그쪽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 다 그리려면 한 3년은 걸릴 것 같아."
나 : "...(그동안 뭐 먹고 사세요?)..."

백성민 화백, 그분은 만화판을 휘젓는 얼치기 가짜 예술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이쯤 되면 과연 예술가란 찬탄을 금할 길이 만무하죠.

하지만 돈을 벌고 싶다면 쓰레기의 세계로 합류하던가, 아니면 일반 대중들도 경탄할만한 진정한 상업주의 예술을 완성시키던가, 이도저도 안되면 딴 일거리를 찾으란 말입니다. 제 의견이냐고요? 그 이전에 자본주의 사회의 진리입니다.

그나마 요즈음 한국의 젊은 작가들 중엔 '예술가'도 없거니와 '공장장'도 없더군요. 하긴 뭐, 이러다 폭싹 망하든가 말든가 내 알 바 아니죠.
2004/06/15 20:19 2004/06/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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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판만화시장만의 문제일지도 모르는 이야기.

    Tracked from 소혼의 [쥬신사] 2004/06/18 03:43

    만화시장에 대한 짧은 의견 아직도 상업만화가 어떻게 구분되어져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