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얘기노라면, 합리(合理)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억지춘향의 유사어가 되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가장 깨는 건, 이 사람들이 자기 편한대로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이다. 이 때 가장 흔히 동원되는 게 '인용'과 '역지사지'다. 한 고리짝같은 천년 전의 고사를 인용하며 "이땐 이러이러했으니, 지금도 이러이러해야 하지 않겠느냐?"란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거나, 아니면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라고 외치기 일쑤다.

하지만 '인용'은 지식을 과시하는 용도일 뿐이고, '역지사지'는 단순한 감정의 발로일 뿐이다. 그런 건 논리도 뭣도 아니다. 그냥 갖다붙이는 거지.

그리고 실제로 겪은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다.

몇 년 전 참여정부 당시, 외교부에서 일하는 (보수) 공무원 형님과 어울려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공무원 (입에서 불을 뿜으며) : "이 미친 놈의 노무현이가 말이야.... 경제가 어려운데 공무원 숫자만 마구 늘리려고 하는 거야! 국민 세금으로 말이지. 이게 말이나 돼?"

우리들 : "말도 안 되지요!"

그런데 당시 화제가 됐던 프랑스 유학생 의문사 사건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나 : "근데 우리나라 외교부는 대체 뭐 하는 거에요? 이런 일이 터졌는데 제대로 도움 한 번 주지도 못하고 말이죠..... 이것도 딴지일보 같은 데서 터뜨리지 않았으면 누가 알았겠냐고요?"

공무원 (입에서 피를 토하며) : "야, 너 알기나 해? 우리나라 외교부 공무원 숫자는 고작 2000명뿐이야! 그 숫자로 전세계를 커버한다고 생각해 봐..... 그런 소소한 사건에 일일이 신경이나 쓸 수 있겠어?"

우리들 : "!@$*(&#@%&@!)!@?"

불과 몇 분 사이에 입장을 바꾸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지사지렷다!
2009/05/30 02:26 2009/05/30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