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카 오디오가 한창일 시절, 대만이 한국보다 인건비가 쌌지. 도저히 가격면에서 경쟁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제품 라인을 한두 개로 줄이는 대신에 생산 물량을 늘려서 가격을 낮췄지. 그랬더니 바이어들이 다 우리나라로 몰려오더라고."
 - 80년대 잘 나가는 전자제품 세일즈맨이셨던 아버님의 회상


1.
얼마 전, 애플이 삼성을 특허 침해 혐의로 고소했다. 삼성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는데, 삼성에선 의외로 빠르게 반격에 나섰다. 즉, 며칠 지나기도 전에 애플을 특허 침해 혐의로 맞고소해 버린 것이다.

겉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만 보면 요즘 스마트폰 업체에 횡행하는 묻지마 고소와 맞고소의 사례 중 하나일 따름이다. 하지만 애플과 삼성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다. 삼성에게 있어서 애플은 최대의 고객이며, 애플에게 있어서 삼성은 주요 부품 제작사다.
하지만 둘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그 전부터 감지할 수 있었다. 이미 올 초부터 애플이 CPU 생산을 TSMC로 위탁할 거란 얘기가 흘러나왔고, 엘피다나 도시바에 메모리 증산을 의뢰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물론 애플이 쉽게 생산 라인을 바꾸지 못할 것이며, 삼성전자 만큼의 생산력을 갖춘 업체도 찾기 힘들 거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설령 애플이 삼성과 거래를 끊는다고 해도, 2011년 매출 목표를 2천억 달러로 잡은 삼성전자에게 있어 80억 달러 수준의 애플과의 거래 중단이 심대한 타격이 될 리 없다는 전망도 있다. 진상이야 어쨌든간에 애플과 삼성은 한가지로 침묵하고 있을 따름이다.


2.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돌아볼 필요가 있는 건 애플이 장사하는 방법이다.

다들 잘 알다시피, 애플은 컴퓨터 업계에서 오랫동안 마이너의 자리를 점유하고 있었다. 특히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애플은 아미가나 아타리처럼 조만간 망해 자빠질 업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맥 매니아들은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상하기까지 한 MacOS가 몰락하는 걸 슬퍼하고, 형편없이 구질구질한 MS 윈도우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는 부조리한 현실에 한탄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애플이 MS처럼 OS 라이센스 사업에 뛰어들었더라면 진작에 큰 성공을 거뒀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주장이었다. 1984년 맥이 막 등장했을 무렵 선보인 애플리케이션은 메모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워드 프로세서인 MacWrite와 흑백의 페인팅 프로그램인 MacPaint, 기타 자잘한 액세서리가 고작이었다. IBM PC의 킬러 앱이었던 Lotus 1-2-3 같은 건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1985년에 MS가 맥용 워드와 엑셀을 내놓긴 했지만, 이미 엄청난 생태계를 구축한 PC 환경을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은 90년대에 들어가면 더욱 심화된다. MS는 윈도우를 발표하고 윈도우용 워드와 엑셀 등을 묶어 오피스 패키지로 판매하고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약속했다. 하지만 맥용 워드나 엑셀은 찬밥이었다. 맥의 무기는 어도비 포토샵과 쿽 익스프레스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맥이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은 DTP 시장 정도밖에 없었다. 결국 애플은 틈새 시장에 비싼 가격으로 맥을 팔아 회사의 생명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도비와 쿽이 윈도우 용 프로그램을 내놓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배경음악 : 한국 실사판 [북두의 권] 주제가). 맥은 틈새 시장에서조차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일부 정신나간 마니아들이나 쓰는 컴퓨터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잡스가 돌아온 이후의 변화 중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애플이 틈새 시장보다 일반 소비자 시장의 공략에 주력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맥은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 시장엔 델이나 HP, ASUS. 레노보/IBM 처럼 쟁쟁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틈새 시장에서 높은 마진을 붙여 비싸게 제품을 팔던 회사가 경쟁하기엔 버거워 보이는 시장이었다.
이 때 애플이 선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제품 라인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대신 부품 발주량을 늘려 단가를 낮춰 최종 제품 가격을 떨어트린 것이다.
사실 반쯤은 미친 짓이었다. 레노보나 델, HP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여느 컴퓨터 회사는 최소 2, 30종의 제품 라인을 갖추고 있다. 롱테일, 숏컷, 귀요미, 어벙이, 똑똑이, 잘난이 등으로 걸그룹을 꾸리면 그 중 하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란 걸그룹 전략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제품을 시장에 많이 깔아놓으면 그 중 하나는 팔릴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이맥이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뒤엎고 아이맥은 보란듯이 대히트를 쳤다. 물론 전체 PC 시장의 판도가 뒤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견고한 생태계를 구축한 x86 기반의 윈도우 PC가 장악한 시장에서 맥은 여전히 소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전략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게 입증되었다. 그리고 2001년, 그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한 게 아이팟이었다.

여태껏 아이팟의 성공 비결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어왔다.
첫 번째로 거론된 것이 아이튠즈와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다. 흠, 확실히 아이튠즈는 괜찮은 프로그램이고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iTMS)는 달리 비견할 바 없는 훌륭한 음악 마켓이다. 하지만 아이튠즈가 모두에게서 환영받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태그 정리 방식보다 폴더 방식이 훨씬 편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아이튠즈를 혐오하는 수준을 넘어 증오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게다가 iTMS가 아이튠즈에 들어간 건 2003년도의 일이었다.
두 번째, 디자인은 어떨까. 흠, 흠, 글쎄, 뭐랄까, 2001년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는 클래식 아이팟의 디자인은…… 담뱃갑을 짓누른 듯 밍숭맹숭 심심하기 짝이 없다. 얼마나 구렸던지, 첫 등장 당시 PC 매거진의 리뷰에서도 디자인에 관한 언급은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http://www.pcmag.com/article2/0,2817,19362,00.asp ). 사람들이 아이팟 디자인에 열광하게 된 건 2004년도에 미니, 2005년도에 나노가 발표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뭐냐, 뛰어난 사용자 경험(UX) 때문이냐? 애플 제품이라면 환장하는 마니아들 때문이냐? 애플 스토어 때문이냐?
아이팟의 성공 비결을 딱 한 가지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모두 다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애플 아이팟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누가 뭐래도 가격이다.

2001년도에 애플 아이팟이 처음 등장했을 때, 5GB 하드 디스크를 탑재한 기본 모델의 판매가는 399달러였다. 당시 북미 MP3 시장의 1인자였던 크리에이티브의 대표적인 대용량 MP3 제품은 노매드 쥬크박스. 이건 6GB 하드 디스크를 탑재한 휴대용 CD 플레이어였다. 흠, 용량도 크고 CD 재생도 된다는 게 마음에 드네. 근데 가격은? 500달러였다.
경쟁제품에 비해 기능은 좀 처지지만 용량대비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 아이팟의 최대 강점이었다.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이팟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착실하게 올라갔고 크리에이티브나 샌디스크, 아이리버의 점유율은 확실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다들 잘 아는 아이팟 나노가 발표된다. 하드 디스크가 아닌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아이팟 나노는 곁눈질로 보기만 해도 뒤집어질 정도로 얇고 쌈빡한 MP3 플레이어였다.
나노 발표 이틀 전, 아이리버는 회심의 역작인 U10을 발표했다. 새끈한 디자인에 혁신적인 디클릭 유저 인터페이스를 채택하고, 아이팟 나노와 마찬가지로 플래시 메모리를 탑재한 제품이었다.  1GB 모델의 판매가는 33만 9천 원, 다른 경쟁사 제품보다 살짝 비싼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뭐가 어쨌든 MP3 종가 아이리버의 신제품 아니란 말이더냐.
그랬는데…… 아이팟 나노 2기가 모델의 미국 판매가는 199달러, 한국 판매가는 23만원이었다! 오, 하느님 맙소사. 게임 오버, 다스 엔데, 오와리데스, 쫑났심더!
그리고 대한민국의 MP3 플레이어 시장은 열심히 팩토리를 세우며 시즈탱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리버 드롭을 당한 테란 본진처럼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MP3 플레이어 종주국이랍시고 콧대를 높이 세우던 한국이 그 꼴이 됐으니 다른 나라야 말해 무엇 하리오.


3.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계기는 과감한 선행 투자였다. 남들이 주저할 때 돈을 쏟아부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설비를 들여오고, 무지막지한 양의 물량을 쏟아내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춰, 경쟁사를 압도한 것이다.
기술력이란 건 중요하긴 하되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어차피 반도체 생산 장비는 거의 대부분이 일제, 미제, 유럽제다. 삼성전자는 누구보다 빨리 최신예 장비를 들여와 효율적인 생산 라인을 구축해서 경쟁 우위에 선 것이다.
거꾸로 말해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앞지르려면, 삼성전자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해 조금 더 규모가 큰 생산시설을 꾸리고 조금 더 싸게 반도체를 찍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밥 아저씨의 말투로) 어때요? 참 쉽죠?

……빌어먹을, 삼성전자만큼 투자하기도 쉽지도 않은데 그거보다 더 많이 투자하라고? 너 미친 거 아냐? 차라리 로또 1등 당첨되는 편이 훨씬 쉽겠다.

그렇다. 여태까진 그랬다. 삼성전자를 능가하기는커녕 그만한 투자 여력을 갖춘 회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애플이란 변수가 끼어든 것이다.

뉴스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됐지만 지금 애플의 현금 보유액은 엄청나다. 어림잡아 500억 달러는 될 거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2011년도 매출 목표의 1/4을 빳빳한 딸라로 가지고 있단 얘기다.
애플의 2011년도 1분기 아이폰/아이팟 터치/아이패드 판매량은 대충 다 합쳐서 2천 5백만 대 정도가 될 걸로 예상된다. 1년이면 약 1억 개다. 애플 CPU의 단가가 대충 25달러에서 30달러라고 추정되니까, 애플에 CPU를 납품하는 AP 파운드리 업체는 애플과의 거래만으로도 1년간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와!). 게다가 애플은 이 돈을 째째하게 어음으로 주지 않는다. 항상 현금이다(꺄아!). 아예 처음부터 상당한 액수의 돈을 선금으로 주면서 공장부터 지으라고 재촉하기도 한다(이얏호!!!).
요컨대 애플과 거래하는 업체는 순식간에 막대한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애플이 CPU나 메모리 거래선을 확대하면서 TSMC나 엘피다에 거액의 선금을 지불한다면 - 이들 업체는 당장 미친듯이 생산 라인을 늘릴 거다. 그것도 최신예 장비로 도배를 해서.
애플이 거래처를 옮기면 삼성전자에 당장 큰 타격이 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쟁자들이 일거에 급상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잠재적인 경쟁자들이 생기거나 말거나, 애플이 등을 돌리거나 말거나, 그런 거하곤 상관 없이 삼성전자는 반도체는 물론 프리미엄급 스마트폰과 타블렛과 컴퓨터와 TV를 전세계 시장에 계속해서 팔아치우며 돈을 갈퀴로 긁어모을 거다. 그럼 된 거 아냐?
맞다. 얼핏 보기엔 그것도 괜찮아 보인다. 문제는, 음, 역시 가격이다.


4.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기를 하겠다.
애플은 확실히 정신나간 회사가 맞다. 쓸데없이 디자인에 집착하느라 미친 짓을 벌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폰 4는 제조 공정의 복잡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미친듯이 나사를 남용하질 않나, 아이패드는 배터리를 고정하는 데 양면 테잎을 쓰질 않나, 맥용 키보드는 상판과 하판을 무식하게 접착제로 붙이질 않나…… 하여간 다른 제조업체에선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짓거리를 태연하게 남발한다.
그 중에서 최고 압권은 아마 애플 제품의 알루미늄 케이스일 것이다.
알루미늄은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서 표면에 산화 피막을 입히는데, 이걸 아노다이징 처리라고 한다. 그런데 알루미늄 원색으로 아노다이징을 하면 미묘한 환경 변화에 따라 처리후 색깔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지인 중에서 알루미늄 케이스 생산에 도전한 사람이 있었는데, 원색 케이스 생산은 이런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상판과 하판의 색깔이 일치하지 않는 불량률이 거의 30%에 육박한 것이다. 그 대신 검은색 알루미늄 케이스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검은색 아노다이징 처리는 변색의 우려가 없어 불량률이 거의 없고, 결과적으로 단가가 대폭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알루미늄으로 외장 케이스를 만들 때 검은색으로 만드는 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애플은 그냥 원색으로 해 버렸다. 뭔가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냐고? 아니, 그런 거 없다. 정해진 색깔에서 벗어나는 건 그냥 아웃시키는 거다. 그게 전부다. 한마디로 말해 돈지랄을 한 거다.

최근에 삼성전자에서 나온 소위 "맥북 에어 킬러"라는 센스 9 노트북은 외장 케이스 소재로 듀랄루민(알루미늄 합금)을 썼다. 근데, 그 색깔은…… 그렇다, 검은색이다. 그리고 11인치 제품 국내 출시판은 128기가 SSD를 탑재하고 있는데, 비슷한 사양의 맥북 에어 11인치와 가격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깜돌이" 삼성전자 센스 9

  • 애플 맥북 에어 : 155만원
    - Core2Duo 1.4Ghz / 2GB RAM / 128GB SSD
  • 삼성 센스 9 : 179만원
    - i3 380UM 1.33Ghz / 2GB RAM(?) / 128GB SSD

이봐, 샘숭, 넌 뭘 믿고 나한테서 24만원이나 더 뜯어가려는 거야? 그놈의 졸라 파랗고 촌시런 샘승 로고가 벌레 먹은 사과 로고보다 24만원은 더 가치 있다고 외치고 싶은 게냐? 아니면 검은색이 더 비싸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냐? 내가 검은색 아노다이징이 원색보다 훨씬 더 싼마이란 것도 모르는 머저린 줄 아냐?

애플은 스위스 은행 못지 않게 쌓아둔 현금을 무기로 삼아 전세계 부품 업체들과 유리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아니, 그보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애플과 거래하려는 업체들은 줄을 서 있는 상황이다. 애플에 부품을 납품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선전이 될 수 있거니와, 단번에 막대한 현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엔 미친 짓도 태연하게 행할 수 있다. CEO인 잡스란 놈부터 살짜쿵 맛이 간 놈인데, 그 밑의 놈들이야 오죽하겠냐.

그러나 삼성전자는 사정이 다르다.
애플처럼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제품 라인을 대폭 줄이고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부품 단가를 극한까지 떨어트려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무작정 따라할 수 없는 입장이다. 누가 뭐래도 삼성전자는 매 분기마다 세계 각지의 시장에 현지화된 제품을 뿌려대는 데 익숙해져 있는 글로벌 가전회사다. 제품 종수를 함부로 줄이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어렵거니와, 단 하나의 제품 실패로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그런 위험천만한 짓거리를 굳이 따라할 이유가 없잖아?

CPU나 메모리, LCD 등을 내부에서 만든다고 해서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보장할 순 없다. 때로는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금 삼성 고가 스마트폰을 대표하는 AMOLED, 이건 가격도 지랄맞게 비싼 데다가 수율도 낮다. 외부 업체에서 AMOLED를 쓰려고 하면 "너네 X만 개는 주문할 거냐?"란 빈정거림이나 듣기 일쑤다. 그러는 사이에 LCD는 AMOLED만큼 얇아지고 전력소비량이 줄어들고 화소수는 대폭 늘어났다. 대다수 업체들이 LCD를 선택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삼성은 AMOLED를 미래 기술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사 제품에 계속 AMOLED를 탑재하며 관련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만큼 원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뭐, 그래도 맥북 에어의 알루미늄 케이스보다는 수율이 높겠지.


5.
삼성과 애플 간의 소송이 뭘 뜻하는 것일지 밖에서 판단하긴 쉽지 않다. 정말로 둘 사이의 관계가 파탄난 것인지, 아니면 앞에선 소송을 하면서 뒤에선 모종의 협상을 진행 중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법무팀의 똘아이들이 사고친 건지, 도대체 누가 알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별로 중요치는 않을 것이다. 기업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건 소송이 아니다. 가격이다.

경쟁사 제품과 비슷하거나 우월한 제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것이야말로 승리를 약속하는 열쇠다. 애플이나 삼성이 각자 자신들의 전략을 유지하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관전 포인트인 것이다.

근데 서두에 언급한, 한때 잘 나가는 카 라디오 세일즈맨이었던 아버님의 회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나 : "그래서 어떻게 됐죠? 한국 회사들이 카 라디오 업계를 휘어잡았나요?"
아버님 : "아니. 한국이 인건비가 너무 올랐어. 결국엔 대만이 다 휘어잡더라고."
나 : "……엥?!"

그리고 지금, 21세기는 대만의 시대가 아니다. 중국의 시대다.
당장 알리바바 닷컴을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10인치 LCD에 1Ghz CPU를 얹은 중국제 안드로이드 타블렛의 도매가는 200달러 이하, MOQ는…… 어라, 20대부터네. 젠장, 회사 때려치고 이거나 팔아 봐?
뭐? 애플이나 쌤숭을 80년대 한국의 코딱지만한 오디오 메이커와 비교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봐,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지금의 중국 업체들도 80년대 대만의 코딱지만한 오디오 메이커와는 급이 다르긴 마찬가지잖아!
2011/05/11 00:44 2011/05/11 00:44
먼저 일본 동북 대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한다. 국적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 같은 지구인이니까.

당면의 문제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후쿠시마의 원전이다. 쓰나미로 인해 비상 발전기가 박살나는 바람에 폭주하기 시작한 원전은지금 이 순간에도 후쿠시마 인근에 치명적인 방사능을 뿌리고 있다. 도쿄 전력, 원전 공급업체, 일본 자위대, 소방청 등등에서 많은 인력이 파견되어 방사능을 뒤집어 써 가면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끝에 사건은 다행히 어느 정도 수습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원전의 안정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책임을 거의 독박으로 뒤집어 쓴 것은 후쿠시마 원전의 경영 주체인 도쿄 전력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망할 놈들이 초기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전혀 엉뚱한 데 불똥을 튀겼으니, 그건 일본의 [주간 만화 고라쿠]에 연재되던 만화 [백룡 레전드(Legend)]다.
[백룡 레전드]는 일종의 야쿠자 만화로, 최근 새로운 에피소드 [원자력 마피아] 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돈과 권력을 휘두르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 온갖 비리를 일삼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을 상대로 하는 에피소드 같은데 - 여기 나오는 동도전력(東都電力)이 도쿄전력(東京電力)이란 건 누구든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불행히도 이 에피소드는 3월 18일 잡지에 실린 것을 끝으로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실제로 일어난 원전 사고에 편승한다는 부담을 뒤집어 쓸까봐 겁이 났던 건지, 아니면 도쿄 전력에서 압력이 들어온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른다.

연재중단이 발표된 직후, 일본의 투채널 등에선 이 만화의 최신 에피소드가 퍼지면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만화일지 궁금해서 찾아 봤는데 - 과연 여러 가지 의미로 오싹해지는 만화였다.
이런 건 나 혼자 보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대충 발번역을 붙여 올리기로 했다. 저작권은 존중해 줘야겠지만, 만화책 전체도 아닌 잡지 1회 연재 분량이라면 - 작가도 너그럽게 용서해 줄 것이라 믿는다.

[백룡 레전드 - 원자력 마피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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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너희들은 원전의 현실을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주인공 (?) : "원전의 현실....?"
안경 : "원전의 내부에선.... 매스컴에 발표되지 않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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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런 걸 전부 다..... 돈과 권력으로 덮어버리는 게 동도전력의 습성이다!"
숨어보는 자 : "미츠모토(아마도 안경) 녀석, 뭘 말할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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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 : "원전이란 게 그렇게 사고가 많은 거야?"
안경 : "원전이란 건, 원자로나 터빈은 두말할 것도 없고 - 그걸 작동시키기 위해 수십만개의 파이프가 사용되고 있어. 말하자면..... 원전은 배관으로 이뤄진 발전 시스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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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만일 주요 배관이 날아가 버리면..... 체르노빌 급의 원전사고가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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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 중요한 배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고 있어?"
모히칸 : "그, 그야 당연히 중요한 배관이니까 최고 기술자를 써서 만들겠지."
안경 :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모히칸 : "아, 아니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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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원전의 배관기술은 화학 플랜트에 비하면 15년은 뒤처져 있어!"
안경 : "이를테면 화학 플랜트에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1960년대에 폐지된 공법을 원전에선 최신 공법이라고 오해해서 1980년대에 채용하기도 했지."
일동 : "에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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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게다가 공사현장은 날림 투성이야!"
안경 :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건, 대형 원자로 메이커가 수주받은 배관공사를 하청에 재하청으로 돌리는 거지."
안경 : "그 주정뱅이가 말한 대로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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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 "원전이라는 데는 다중구조로 된 하청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고!" (회상 씬)
안경 : "배관공에겐 동도전력에서 하루 7만엔의 일당이 나오지. 그러나 하청으로 돌릴 때마다 조금씩 뜯겨서.... 현장의 작업원에게 건네지는 일당은 8천엔에서 7천엔까지 내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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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 : "7천엔?"
뽀글머리 : "10분의 1이잖아! 심하다.... 야쿠자도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
안경 : "그 돈으로 제대로 된 기술자를 고용할 수 있을 리 없어! 당연히 현장에서 배관을 하는 작업원은 주변의 농부나 어부 아저씨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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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 (아연실색)
안경 : "게다가.... 아무 자격도 없는 작업원에게 용접공의 위조 면허를 주기도 하지."
뽀글머리 : "뭐, 뭐라고?"
안경 : "취재 과정에서 성명이 기입되지 않은 백지 자격증명서를 몇 장이나 발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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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머리 : "심하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공사가 되겠어?"
안경 : "될 리가 없지!"
안경 : "이를테면 용접 도중에서 파이프에 작은 구멍이 뚫릴 때가 있어. 그런 구멍은 배관이 깨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파괴검사를 해서 구멍의 유무를 체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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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검사는 주로 컬러 검사 방법을 써. 먼저 빨간 침투액을 파이프에 칠하고.... 그 위에 하얀 스프레이를 뿌리지. 깨진 데가 있으면 그 흔적이.... 떠오르게 돼!"
안경 : "하지만 구멍이 나거나 깨진 파이프를 몇 번이나 수리해도 컬러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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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그래선 공사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때 현장에선 먼저 하얀 스프레이를 칠하지. 그러면 침투액을 칠해도 깨진 부분이 떠오르지 않아서 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 거야."
뽀글머리 : "말도 안 돼! 그건 눈속임이잖아!"
안경 : "그건 그나마 나은 편이야..... 겨우 2미터의 파이프를 연결하는데 5센티미터나 벌어지는 바람에 연결할 수 없을 때도 있지. 그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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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3톤 급의 체인 블록을 몇 개나 파이프에 걸어서 잡아당겨 억지로 연결시키지!"
뽀글머리 : "그, 그런 짓을 계속하다간 어떻게 되는 거지....?"
안경 : "파이프에는 항상 원래대로 돌아오려고 하는 압력이 걸리게 되겠지....."
안경 :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파열할 수도 있어! 혹시 그게 주요 배관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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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체르노빌의 재연이 된다!"
모히칸 : "그,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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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 : "너 이미 엄청난 꺼리를 물었잖아!"
뽀글머리 : "맞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특종감이야!"
안경 : "아니, 아직이야...... 동도전력은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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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 "훨씬 더 깊은 어둠을 껴안고 있다!"
주인공 (?) : "그.... 어둠이란 게 뭐지?!"

 - 계속 -

....아마 다음 편에는 동도전력의 거대한 어둠과 맞서 싸우는 야쿠자들의 활약이 그려질 예정이었을 것이다. 에피소드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는 바람에 이 뒤를 볼 수 없게 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어쨌든 여기 나오는 원전 이야기는 굉장히 설득력이 높다. 어느 정도 과장은 섞여 있겠지만 실제로 취재한 사실에 입각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읽다 보면 오싹해질 지경이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 해서 그 오싹함의 강도가 덜하거나 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을 주고, 눈속임을 일삼는 건 - 우리나라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테니까!
2011/03/20 20:31 2011/03/20 20:31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열린 CES는 대성황이었던 모양이다. 삼성, LG, 소니, MS 등등 어지간한 IT 기업은 다 참가했으니까. 아, 애플 빼고.
직접 CES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기자는 물론, 멀리서 기사를 보며 입맛만 다시는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기업들이 내놓는 신제품에 집중되어 있다. 매끈하고, 상큼하고, 유려하고, 섹시한 S라인을 가진 타블렛이나 스마트폰의 사진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침을 질질 흘린다. 이야, 저거 죽여주는데? 매장에 나오기만 하면 당장 질러 주마!

그런데 CES에 전시된 쭉쭉빵빵 하드웨어에 넋이 나간 사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뉴스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아마존에서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시장에 뛰어든다는 발표였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아마존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구글 앱스토어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심사 과정이 있으며,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PC에서도 앱을 구매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초기 등록비는 99달러라지만 첫 해에는 면제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발자에겐 애플리케이션 판매가의 70% 또는 정가의 20% 중 큰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애플 앱스토어와 거의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형태야 어쨌건간에 통신사는 물론 제조사들도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운영에 뛰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SKT, KT가 경쟁적으로 앱스토어를 열었고, 삼성전자도 영국에서 앱스토어를 런칭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아마존이 발 담근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야?

음, 글쎄, 하지만 달라질 게 있을 것이다. 분명히.

현재 구글 앱스토어의 초기 등록비는 25달러로 애플의 연간 등록비 99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앱을 등록할 때도 번거로운 심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자유 방임주의,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카오스가 도래했다. 쓰레기 같고 거지 같은 앱들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장이 열린 것이다. 못 믿겠다고? 그렇다면 구글 앱스토어를 열고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Hello World]와 [Test] 앱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건 뭐, 아타리 쇼크 ( http://mirror.enha.kr/wiki/아타리%20쇼크 ) 직전의 게임 시장과 비견해도 좋을 정도로 개판이다. 작년 말에 구글 앱스토어의 앱 숫자가 비공식적으로 10만 개를 넘었다며 요란을 떨었지만 실속 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아, 물론 애플 앱스토어에도 쓰레기는 많다. 하지만 최소한도 거기엔 [Hello World]나 [Test]는 없다. 애플에서 앱을 등록하기 전에 최소한의 품질 검토 과정을 거쳐서, 자격이 안 되는 앱은 등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있지만, 거기 대해선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너무 복잡해지니까).
문제는 또 있다. 아이폰은 번거로운 탈옥 과정을 거쳐야만 크랙 앱을 설치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는 그런 거 필요 없다. 크랙 앱을 다운받아 집어넣기만 하면 끝이다. 이 때문에 크랙 앱만 유통시키는 블랙 마켓 앱스토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물론 개발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구글 측에 공식 앱스토어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앱 정보를 충실하게 꾸밀 수 있게 해야 한다, 크랙 앱 설치를 어렵게 해야 한다, 거지 같은 앱들을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우리들의 구글은 그 모든 목소리를 상콤하게 무시하고 있다. 왜? 어째서? 뭣 때문에?
여기서 잠깐 구글의 정체성을 알아 보자. 음, 구글이 뭐 하는 회사지? 세계 제일의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가진 인터넷 회사?
아니, 천만의 말씀. 구글은 광고 플랫폼 회사다.
구글의 주요 수익원은 검색 엔진에 기반한 검색 광고를 대형 포탈 사이트에 납품하는 것이다. 이뿐이라면 오버츄어와 별 다를 것도 없겠지만 - 구글에게 애드센스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애드센스의 등장은 전세계 블로거와 소규모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붙이기만 하면 딸라가 쏟아진다고? 이거야말로 빛이요, 소금이요, 진리일지어니 소리 높여 외쳐라, 할렐루야! 반야바라밀! 아리가또, 땡스!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 덕분에 애드센스는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애드센스가 안 붙어 있는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TV나 신문, 잡지가 가지고 있던 광고 시장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구글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현재 구글이 올리고 있는 천문학적인 수익 대부분은 광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MS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먹고 사는 것과는 대조된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구글의 모바일 광고 시장 개척을 위한 첨병이다.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쓸 수 있게 공개한 건, 구글 경영진이 12월 말에 빨간 옷을 입고 남의 집 굴뚝이나 넘나드는 변태 영감탱이처럼 자비롭고 선량해서가 아니다.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하면, 개발자들이 안드로이드 앱 개발에 달려들 테고 - 그리하여 자신들이 인수한 애드몹을 비롯한 각종 모바일 광고로 도배된 앱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것이 구글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 구도에서 구글이 원하는 앱은 유료 앱이 아니다. 광고를 붙인 - 그것도 구글의 광고를 붙인 무료 앱이다. 그래서 구글은 앱스토어의 품질 관리를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개발자들에게 공짜 전략을 채택할 것을 은연중에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요? 애플은 앱 판매비의 30%를 뜯어간다고요? 뭐 그런 도둑놈들이 다 있어! 걱정 마세요. 우리 구글 앱스토어는 개발자 분들에게 수익을 100% 그대로 되돌려 드린답니다. 에…… 근데 버는 게 없어서 품질 검토 같은 건 해 드릴 수 없네요. 개발자 지원도 기대하진 마세요. 예? 그래선 제대로 된 앱을 만들 수 없다고요? 에이, 왜 그러세요, 아마추어 같이…… 대충 만들어서 공짜로 뿌리면 되죠. 공짜면 다들 미친듯이 달라붙는 거 아시잖아요? 뭐라고요? 그럼 돈은 어떻게 버냐고요? 그야 물론 우리 구글 광고를 붙이면 되죠! (오, 예!)
공짜 앞에 장사 없다. 인터넷 업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금언, 구글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이 믿음에 무게를 실어 주는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아이폰에서 대히트를 친 게임, 앵그리 버드가 안드로이드에선 광고를 탑재한 무료판으로 배포된 것이다. 앵그리버드는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 등장하기 무섭게 5백만 번 이상 다운로드되었고, 제작사인 로비오에게 월 100만 달러씩 수익을 안겨다 줄 거란 전망이 나왔다. 1년이면 1,200만 달러로 아이폰에서의 판매수익 800만 달러를 능가한다는 계산이다. 이거 죽이는데?

그런데…… 잘 나갈락말락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아마존이 끼어들겠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수익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품질의 유료 앱이 등장해서 팔리지 않으면 아마존은 땡전 한 푼 벌지 못한다. 즉, 아마존은 유료 앱을 활성화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건 모바일 광고로 돈을 벌려는 구글의 공짜 전략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SKT나 KT, 삼성전자 등 여러 통신사나 제조사들이 운영하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도 구글 앱스토어와 충돌하는 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굉장히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구글은 당연히 이것들을 한데 묶어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경쟁이나 위협이 되기엔 너무 보잘 것 없는 상대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마존은 다르다. 컨텐츠 유통 쪽에선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삭한 노하우를 쌓아올린 데다가,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선 구글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만찮은 기업이다.
더군다나 구글의 공짜 전략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먹혀들고 있지 않다. 광고로 돈을 버는 건 앵그리버드 제작사 정도밖에 없다. 광고 운영도 결코 투명하지 않다. 애드센스의 수익 배분율은 오랫동안 비밀에 싸여 있었고, 애플이 iAD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지난 5월경에야 겨우 공개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결코 알 수 없다. 애드센스 관리자 페이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건 클릭율 정도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클릭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게다가 구글에서 아무런 증빙 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부정 클릭이 있었다는 핑계로 애드센스를 차단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여보쇼, 구글님. Don't be evil도 좋지만, Be fair도 중요한 거 아닌지요?.
어쨌든 절대 다수의 개발자들이 구글의 앱스토어 정책에 크든 적든 불만을 품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일 아마존 앱스토어가 성공리에 자리잡는다면, 그리고 확실하게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들리면, 이들은 즉시 구글 앱스토어를 떠나 아마존에 합류할 것이다.
이럴 경우 구글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되지 않는다. 1) 앱스토어 운영 정책을 애플이나 아마존처럼 바꾸던가 2) 안드로이드의 개방성을 포기하고 다른 앱스토어를 모두 쫓아내 버리던가 3) 아니면 팔짱 끼고 방관하며 도도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하다가 쪼그라드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애초에 구상했던 그림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구글 애드몹 광고를 덕지덕지 붙인 공짜 앱의 쓰나미가 세상을 덮치고, 아마존 앱스토어는 비실대다가 죽어버리고, 애플 아이폰은 일체형 배터리를 추앙하고 유료 앱을 돈 주고 사서 쓰는 한 줌 변태들이나 좋아하는 스마트폰으로 전락해버리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마존이 실패하더라도 안드로이드의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끝판왕이라 부르는 존재 - MS가 칼을 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칼이 아니라, 다마스쿠스 강으로 벼린 반월도처럼 날카로운 칼을 말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2011/01/09 23:59 2011/01/09 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