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역에 나가 동생을 만났다. 그리고 서울역 광장으로 나가는데, 광장 한복판에선 새까만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도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탈레반은 저런 자식 안 잡아가고 뭐 하냐?"라는 표정을 짓기만 했다.

나 : "(싸늘하게 미소지으며) 그놈의 사랑, 돼지나 물어가 버리라지(주1)... 정말 저 빌어먹을 개독들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니까."

동생 : "누가 아니래...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지하철에서도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인간이 있었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말야. 그런데 내 옆에 있던 아줌마가 그 꼴을 보더니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나 : "글쎄... 저따위 인간들은 당장 모가지를 따서 예수님 곁으로 보내버려야 한다고 했냐?"

동생 : "아니. '저런 놈들이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예수는 개(DOG)다!'라고 하더라고..."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외쳤다.

나 : "그 아줌마, 브라보!"

그래, 맞아, 저런 놈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천국은 아마 개판이겠지. 끄덕끄덕.


(주1: 성경보다 2조 8천억배 이상 거룩한 책, [우주의 늑대 혼] 1부에 나오는 명대사의 인용)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8/31 13:43 2007/08/31 13:43

트랙백 주소 :: http://djhan.ddanzimovie.com/trackback/938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지선 2007/10/26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거 올리는 사람이 더 웃기던데....

  2. 개독교라 하면서 2007/10/29 0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그달린 글은.. 전부 기독교적이네요..ㅎㅎ

  3. 김수형 2008/04/26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그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하늘의 소망을 공고히 하는 사명을 가진 우리 한국의 교회가 병이나 고치고 사업의 흥왕이나 빌어주고 자녀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무당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녁 여섯시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오는 애국가에 발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마음에도 없는 경의를 표하던 기억이 납니다. 예배당에 앉아 혹시 그런 습관적이며 형식적인 예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지요?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는 것이며, 어디를 목적지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정말 여러분은 아십니까?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저 어떤 힘 있는 존재의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이나 이루고 문제해결이나 하는 무속신앙의 모습과 섞여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의 말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이제 비빔밥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기복교가 되었다는 웃지 못 할 농담이 정설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처럼 구복(求福)자가 어떤 큰 힘을 가진 존재에게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샤먼이라는 무당을 중재자로 세우고 그를 통해 치성을 드리는 것은 샤머니즘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목사라는 샤먼을 중재자로 세우고 하나님이라는 그저 힘만 센 비인격적인 어떤 존재를 달래고 닦달해서 복이나 받아내려고 하는 그런 무당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와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게 되면 첫 번째로 찾아오는 것이 ‘고난’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수많은 샤먼들은 자신의 세(勢)를 늘리고 과시하기 위해 그 ‘고난’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어줍지 않은 ‘복(福)’으로 포장을 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청중이 듣기 싫은 소리는 안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교회의 강대상에서 ‘죄’와 ‘회개’와 ‘고난’과 ‘심판’ 그리고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같은 주제들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들이 ‘만사형통’ ‘질병치유’ ‘신비한 체험’같은 것들입니다. 과학적 논리로 무장한 현대인들은 과학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신기한 현상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넘어갑니다. 물질주의, 실용주의, 역사 낙관주의, 성공주의, 소유 지향성, 맘모니즘에 젖은 현대인들은 만사형통의 당근 앞에서 허리를 조아리고 연신 ‘주옵소서’를 외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다 가신 그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가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의 삶을 기꺼이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성경은 ‘천국’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자신의 손해로 남의 유익을 챙기는 삶이 과연 만사형통이요 일사천리로 나타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치성(致誠)을 드려 강청(强請)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기독교라면 그 탐욕스런 기도 속에서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삶을 달게 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나날 수 가 있겠습니까?

  4. 흐음흐음 2009/02/02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줌마 짱!!-_-bb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