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사람을 베지 않는 칼은 단순한 장식품에 불과하지요."
검룡은 눈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벽에 걸린 칼을 차례로 살폈다. 그러던 중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어느 한 지점에 고정시켰다.
어피(魚皮)로 싼 칼집, 질긴 상어 가죽을 두른 칼자루, 눈에 띄는 장식이라곤 하나도 없는 평범한 칼이었다. 그러나 검룡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칼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칼이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칼이 피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을!
그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뻗어 칼자루를 붙잡았다.
그리고 지독하게 차가운 섬광과 함께, 냉혹하게 다듬어진 칼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환도와 직도의 중간 정도로 휘어진 네 척 길이 칼몸은 살벌한 은빛, 얼핏 보기엔 평범하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요기(妖氣)라고도 할 수 있는 음산한 기운에 둘러싸인 칼날, 그것은 이미 칼이라기보다는 살기(殺氣)의 덩어리와도 같은 존재.
"좋은 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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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은 가볍게 허공을 휘저었다. 빛이 번쩍이며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
제대로 골랐군, 정말 제대로 골랐어." 강노인의 누런 이빨 사이로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게 어떻게 만든 칼인 줄
알아? 다섯 자루나 되는 옛날 칼을 녹여서 수천 번을 담금질해 만든 거야. 그것도 하나같이 저주받았다느니, 악령이 들었다느니,
귀신 들린 칼이라느니 하는 것들만 골라서 녹인 거지."
"피는 먹였습니까?"
칼을 만드는 마지막 과정, 그것은 뜨겁게 담금질한 칼몸에 한 방울의 피를 먹이는 것이다. 그것은 사소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었다. 제때 피를 먹이지 않은 칼은 미친 듯이 피를 갈구하는 마검(魔劍)으로 전락하기 때문이었다.
"자네 미쳤나? 저주받은 칼을 모아서, 녹이고, 팔이 빠져라 두들겨서 새 칼을 만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 잡아먹는 칼을 만들기 위해서겠죠."
"맞아, 바로 그거야." 강노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낄낄댔다. "정말 죽여주는 칼을 만들고 싶었단 말이지."
"영감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시험해봐야겠군요."
"그렇다면 좋은 게 있지."
강노인은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나가, 마당 한쪽에 세워진 쇠기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건 말이지, 안쪽에 텅스텐 심을 박고 그 위에 티타늄 합금강을 덧씌우고, 마지막으로 스테인리스스틸로 껍데기를 만들어 씌운 거야. 보통 칼로 어설프게 베려고 들었다간 칼이 남아나질 못하지."
"짚단 베기보단 훨씬 재미있겠군요."
검룡은 성큼성큼 마당의 한쪽 끝으로 걸음을 옮겨 쇠기둥을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칼을 높이 들어올렸다. 허공을 꿰뚫고 목표를 응시하는 눈에 차가운 살의(殺意)가 서리기 시작했고, 수직으로 일어선 칼날엔 귀기(鬼氣)가 흘렀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발짝씩 움직이며 마치 붓글씨를 쓰듯이 칼을 휘둘렀다. 오랫동안 반복을 거듭한 끝에 젓가락질처럼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동작, 아름답고도 엄격한 연무(演武).
베어라!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무술을 배웠는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검룡의 아버지는 안에서는 증산도의 호법(護法)이었고, 밖에서는 공화국의 군인이었다. 전쟁이 터졌을 때, 그는 최전선에서 무수한
적군을 살상하며 빛나는 공훈을 세웠다. 그리고 최후의 동경 공방전에서 적의 마지막 방어선을 돌파하며 공화국 영웅의 칭호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동경에서 이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오명(汚名)을 홀로 뒤집어 써야만 했다. 모든 훈장을
박탈당하고 전쟁 범죄자로 국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것은 공화국의 발전을 시기하는 외국인들의
농간이었고, 나라와 민족을 통째로 외국에 팔아 넘기는 짓조차 서슴지 않는 기독교도들의 책략이었고, 거기에 홀딱 넘어간 비열한
정치가들이 꾸민 지저분한 음모였다.
그는 불명예로 얼룩진 삶을 과감하게 거부했다. 대신,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쪽을 선택했다. 검룡이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베어라!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칼을 필요로 하는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피로 얼룩진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 날, 그는 단지 공포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막역한 친구 사이였던 증산도의
전대(前代) 도주가 그에게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순간, 공포심은 증오심으로 돌변했다.
그는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믿음을 위해서 투쟁하는 길로 들어섰다. 혹독한 훈련으로 육체를 뜨겁게 단련하고, 차가운 분노로
영혼을 담금질했다.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들의 이름을 외우고, 나라의 기틀을 뒤흔드는 적들을 미워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그 모든 적을 도륙하는 방법을 배우며, 아버지가 이백만 명을 학살한 도살자라는 사실에 자부심마저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검룡이라는 이름과 함께 한 자루의 칼을 받아 들고 전쟁터로 나섰다. 기독교도를 베기 위해서, 기독교도를 죽이기 위해서!
베어라!
검기(劍氣)가 송곳처럼 돌출된 칼날이 곡선을 그리며 쇠기둥을 관통하는 순간, 손끝에는 아무런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릴 뿐이었다. 그러나 검룡이 칼을 회수하는 순간, 쇠기둥 한가운데 일직선으로 빗금이
생겼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순간, 절단된 쇳덩이가 흙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검룡은 햇빛 아래 찬연한 빛을 내뿜는 칼날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과연 대단한 칼이오.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군."
"내가 만든 칼이니까 당연하지." 강노인은 자부심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그 칼의 이름은 뭐라고 할 건가?"
"내 검호(劍號)가 검룡이니, 이 칼의 이름도 당연히 용이 되어야겠지." 그는 칼끝을 하늘로 향하며 큰소리로 말했다. "천룡(天龍), 이 칼은 앞으로 천룡검이라 불릴 것이다!"
"자네가 쓰는 칼이니 천룡검이라기보다는 사룡검(邪龍劍)이라거나 마룡검(魔龍劍)이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군." 노인이 킥킥대며 말을 이었다. "헌데 그 칼로 제일 먼저 누구를 벨 작정인가?"
검룡의 삭막한 눈동자에 광기가 감돌고, 냉정한 입술이 뒤틀린 곡선을 그리며, 웃었다.
"아직 채 돌이 지나지 않은 어린애를 벨 생각이요."
"정말인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봤소?"
싯누런 이빨을 사정없이 드러내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강노인의 누리끼리한 눈이 기괴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좋아, 정말 좋아, 아주 좋아! 죽일 수 있을 때 가리지 말고 실컷 죽여! 그럼 정말 죽여주는 칼이 될 걸세, 내가 만든 칼 중에서 최고의 칼이 될 거라고!"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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