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에서 챈들러는 말했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잠시동안 죽는다는 것이라고.

나는 어제 강남 성모 병원에 갔다. 근 8년 가까이 내 어금니를 압박해 온 사랑니를 뽑기 위해서. 치과의사는 파노라마 뢴트겐 사진을 보더니 턱을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뿌리가 휘어졌네요. 어쩌면 뽑는 도중에 뿌리를 남겨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무리해서 뽑다가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날카로운 드릴이 파고드는 소리가 턱을 진동시키고 고막을 울렸다. 부서진 이빨 조각이 입천장을 두들기고, 뜨겁게 달궈진 드릴에 혀가 데었다. 그러는 도중에 의사와 간호사의 무미건조한 대화가 들렸다.

"여기, 연기 나지 않게 물 좀 잘 뿌리세요."
"예."

뒤이어 무언가가 이빨을 죄면서 세게 잡아당기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리고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뚝 부러지는 소리가 날 겁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을 잡아당겨도 부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의사는 조금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좀 더 드릴로 갈아서 부러뜨러야겠네."

못으로 유리창을 긁는 듯한, 모골이 송연해지는 드릴 소리가 쉼 없이 뇌수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잇몸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랑니는 결코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는 내 윗턱과 아랫턱을 붙들고 깨고 부수고 잡아당겼다. 우두둑, 뚝,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그리고 턱이 마비되는 고통.

한 시간 삼십 분, 사랑니를 완전히 뽑아내기까지 한 시간 삼십 분이 걸렸다. 그게 어제 일이었다. 그리고 아랫턱이 얼얼한 고통의 여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남아 있는 이빨들이 강풍에 흔들리는 허수아비처럼 건들거리는 듯 하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잠시동안 죽는 것이 아니다. 괴상한 모양새로 솟아난 빌어먹을 사랑니에 안녕이라고 말하기 위해선, 오랫동안 계속될 고통을 견딜 자신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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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9 21:54 2006/09/0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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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cdc 2006/09/09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언젠가 처리를 하긴 해야할텐데...무섭습니다 ㅠ_ㅠ

  2. djhan 2006/09/09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cdc님> 훗훗훗, 빨리 하세요 (나만 죽을 순 없다!)

  3. 초록불 2006/09/09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화한 종족은 아래 사랑니 같은 건 나지 않는 법입니다. (진화족이 애도를 표합니다.)

  4. salsal 2006/09/10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얼마전에 대공사를 벌이긴 했습니다만... 아직 하나 남아있군요 -_-a

  5. 매혹 2006/09/12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고고... 그거 직접 체험해 본 사람 아니면 진짜 그 고통 모르죠... 저도 둘이서 한 시간 넘게 뽀개고, 빼고, 난리를 치더니... 긴장하고 악을 써서 얼마나 땀이 많이 흐르던지... 담날 바로 몸살에 걸렸습니다. 생이빨을 그렇게 무작스럽게 뽑아댔으니... 암턴, 몸 조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
    동생분 링크 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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