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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보, 장손혁의 잔인한 눈이 맨 앞에서 돌진해 오는 사람과 말을 겨눴다. 서른 보, 오른손이 고현기를 세차게 움직이며 한 척짜리 짧은 화살이 정체된 공기를 찢으며 세차게 날아갔다.
첫 번째 화살, 그것은 서종화가 탄 말의 정수리에 박혔다. 말은 무릎을 꿇으며 길게 미끄러졌고, 서종화는 균형을 잃고 보기 흉하게 땅바닥에 나뒹굴었고, 쓰러진 말은 한차례 구슬프게 울며 버둥대다가 목을 길게 뻗으며 생명의 끈을 놓쳤다.
두 번째 화살, 그것은 다른 기수의 왼 눈에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화살이 박힌 눈알을 태연하게 뽑아내 으적으적 씹어먹고 다시 싸움터에 뛰어들어 공을 세우는 위업을 달성하여 청사(靑史)에 길이 이름을 남긴 하후돈같은 인간도 있으나, 그런 행동은 비범함보다는 평범함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보통 인간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고삐를 놓치고 말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를 뿐이었다.
세번째 화살, 그것은 마지막 기수의 오른 손목에 꽂혔다. 그는 외마디소리를 내뱉으며 편곤을 떨어트렸다. 뒤이은 네번째 화살, 그것은 그의 목 울대를 관통했다. 뚫린 구멍에서 피를 내뿜고 입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기수는 눈을 까뒤집고 말에서 거꾸로 떨어졌다. 그 즉시 목이 부러지고, 한 차례 나뒹굴며 허리가 꺾이고 팔다리가 부러져, 인형놀이에 싫증난 아이가 망가뜨린 인형처럼 기묘하게 구겨지고 접힌 몰골로 널부러졌다.
주인을 잃고 홀가분해진 말들은 좌우로 흩어져서 멀리 도망쳤다. 그 틈을 타서 장손혁은 앞에 세운 말들의 엉덩이를 제갈노로 냅다 후려갈기며 호령했다.
"이랴! 이랴!"
지나치게 거친 대접에 놀라고 야만적인 취급에 분노한 네 필의 말은 더운 콧김을 내뿜으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100관이 넘는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말들이 이미 기세가 반쯤 꺾인 백백신교의 사람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리고, 누군가 외쳤다.
"도망쳐!"
운명의 철퇴처럼 달려드는 두툼한 말발굽에 채인 인간의 몸뚱이가 하늘 높이 비상했다가 자갈밭에 떨어지고 다시 발굽에 짓밟혀 뼈가 으스러지면서, 모래먼지가 높이 피어 오르는 와중에 한 줄기 처절한 단말마를 남겼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둥지를 턴 사냥꾼에게 까투리 장끼 모두 잃고 쫓기는 꺼병이처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장손혁의 제갈노는 놀고 있지 않았다. 한 번 풀무질을 할 때마다 요행히 말발굽을 피한 사람들의 머리와 팔다리와 몸뚱이를 노리는 화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 발 화살이 날아갈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부위를 감싸 안고 붉은 피와 안타까운 비명을 흘리며 모래먼지 속으로 넘어졌다.
철컥, 철컥, 아무리 고현기를 움직여도 화살이 나가지 않았다. 전갑에 들어 있던 서른 발의 화살을 모두 쏜 것이었다. 어차피 더 쏠 필요도 없었다. 평원을 질주하는 싸늘한 바람이 먼지를 걷어가며 황금 같은 침묵에 빠진 죽은 자와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버둥대는 산 자가 뒤엉킨 피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종화는 칼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낙마할 때 낙법을 쓰고 말들이 달려들 때 경공술로 몸을 피해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그러나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옷이 걸레처럼 찢어지고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어 낭패한 몰골이 되는 것만은 피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개가 죽은 사람이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은 화살에 꿰이거나 팔다리가 부러지고 꺾어져 끙끙대며 앓고 있었다. 그는 흙빛이 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히힝거리는 말울음 소리, 갑자기 희푸른 빛이 튀어나와 그의 눈앞을 가로질러 목젖에 와 닿았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 칼날이었다.
"이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리 놀라나."
불유쾌한 감정이 섞인 목소리, 서종화의 눈길이 슬그머니 칼날을 따라갔다. 투명한 광채를 내뿜는 크게 휘어진 칼날, 매화꽃처럼 생긴 코둥이, 강인한 손목, 허름한 옷, 얼굴을 가린 지저분한 헝겊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횃불처럼 타오르는 잔인한 눈동자, 그 모든 것의 총합은 말등 위에 거만하게 걸터앉은 장손혁이었다.
"너희들이 이렇게 불꽃에 뛰어드는 부나방 흉내를 내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군. 현무문이 정말로 작심하고 너희들을 상대하면 어떻게 될 지 눈에 보이지도 않냐?"
장손혁의 말이 옳았다. 백백신교가 제아무리 교세를 키웠다 한들 그 이름은 뜻 있는 사람들에게 경원시당하는 사교집단에 불과했고 그 규모는 강호의 이름난 방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만일, 산동 일대에서 이름 높은 무림 정파인 현무문과 정면 대결을 펼친다면 승패의 향방은 명명백백했다. 그 말의 무게감 때문에, 그리고 살갗을 파고드는 칼날의 서늘함 때문에, 서종화는 식은땀을 흘렸다.
백백신교는 현지위를 되도록 조용히 해치워야만 했다. 가능한 아무도 모르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소란을 피우더라도, 현무문이나 다른 정파의 사람이 휘말려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변경의 객잔에서 현지위를 암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애꿎은 백하응의 목숨을 빼앗아 쓸데 없는 원한을 만들고 진짜 목표인 현지위는 멀쩡하게 살아남은 시점에서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두 손 툭툭 털고 물러나야 했다. 그러지 않고 현지위의 목을 가져오는 일을 참외밭에서 참외 따오듯이 쉬운 일로 생각하고 달려 나온 것이 실수였다. 서종화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자신의 목을 겨누는 칼날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스레 입을 열었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에 굳어진 혀는 제대로 말을 내뱉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대, 대협의 말씀이 구구절절 옳습니다. 이 모자란 무리를 깨, 깨,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손혁은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난 대협 따위가 아냐."
칼끝이 손톱 두께만큼 전진했고, 서종화는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제, 제발, 대협. 요, 용서해 주십시오!"
"죄지은 자가 마지막에 갈구하는 것이 용서지. 하지만 난 그걸 값싸게 남발할 생각이 없어."
예리한 칼끝이 목울대에서 경동맥으로 움직이면서 머리카락만한 두께로 피부가 베이며 목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서종화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조건부로 용서해 줄 수는 있어."
"어떤 조건입니까?"
백백신교의 백양장로라는 높고 귀한 자리에서 떵떵거리며 소리치는데 익숙해져 있던 서종화였다. 비굴하게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 익숙할 리야 없었고, 살아남은 부하들의 경멸어린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을 까닭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 뿐인 귀중한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가리고 따질 여유가 없었다.
"세 가지 있네. 먼저, 첫 번째는 현지위를 비롯한 현무문 사람들을 건들지 말 것."
그러자 서종화는 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두 번째, 언제 어디서건 나를 건들지 말 것."
"물론입죠. 헌데 대협의 높으신 성과 큰 이름은 어찌 되십니까?"
"알아서 뭐 하게?"
번쩍이는 칼끝이 그의 턱끝을 두들길 듯이 일어섰다. 서종화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잠시만요,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대협께서 어떤 분인지 알아야 저희가 미리미리 길을 비켜 드리고 치워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함을 여쭤본 겁니다."
"길을 비키고 치워 준다고? 말 한 번 그럴싸하군.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내 갈 길을 앞질러 가서 독을 풀고 손을 쓰려는 속셈이겠지. 이번에 현지위에게 그랬듯이."
"하늘에 맹세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서종화가 입에서 침을 튀기며 필사적으로 변명하니, 장손혁은 의심스런 눈길로 그를 쏘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좋아하겠군. 맹세를 지키지 않아도 될 테니까. 어쨌든 날 어떻게 알아볼 지는 걱정하지 마. 세 번째, 네놈이 허리에 찬 그 은패를 내 놔. 그 정도면 아까 도망친 말 값으로는 충분하겠지. 자, 어서 여기 칼 끝에 걸어."
그러자 서종화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백양장로의 은패를 풀어서 녹색 술이 달린 매듭을 칼끝에 조심 조심 걸었다. 칼끝이 잠시 뒤로 물러섰다가 훌쩍 일어서니 은패가 태양을 향해 솟구쳤다. 빙글빙글 도는 은패에 햇빛이 반사되며 여러 갈래로 번쩍이더니, 다음 순간, 장손혁의 손아귀가 그 빛을 감싸안았다.
"이제 너희들에게 날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그는 왼손을 펼쳐서 방금 잡은 은패를 보여줬다. "내가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너희들에게 이 은패를 보여주지. 그러면 아무 소리 말고 조용히 물러나라고. 만에 하나, 너희들 중에 이 은패를 보고서도 모른 척 하는 놈이 있다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그 머리통을 몸통에서 떼어버리겠어. 그러니 부하들한테 단단히 잘 일러 둬. 네놈의 은패를 가진 사람을 보거든 봐도 말도 걸지 말고 손도 대지 말고 조용히 피해 가라고 말이야. 잘 알겠지?"
-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