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에서
어째서 사람들이 계속하여 한나라당을 찍어주는가에 대한 개인적 고찰과 논리적 해답,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의 대가>>
"제발 좀 도와주게."
최문식은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쥐어짜는 듯이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강원도 깡촌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불알친구였다. 짧은 소년기를 마감하고 서울에 올라와 청년기로 접어든 뒤로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자 다른 길로 갈라졌다. 나는 로봇 공학자가 되어 대학 연구소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는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들어 부평초처럼 떠돌아 다녔다.
하지만 5년 전, 최문식은 경상도 김해시에서 '선상님'으로 통하는 4선 의원, 김형태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오랜 정치적인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자신의 행정력을 인정해 준 '선상님'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봉사했고, 그 충성심을 인정받아 재작년엔 수석 비서관으로 승진했다. 그때부터 눈코 뜰새 없이 바빠져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 친구가 난데없이 연구실에 찾아와 애원하는 말을 늘어놓으니, 나로서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이봐, 갑자기 뭘 도와달라는 거야? 설마 보증 서 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나?"
"아니, 그런 건 아냐."
빛 보증 부탁이라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 몰라 전정 긍긍하던 나는 다행이다 싶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뭔가? '선상님' 표라도 모아달라는 건가? 미리 말해 두겠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난 경상도 쪽엔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아니, 그것도 아냐."
"돈 문제도 아니고 표 문제도 아니라면 대체 뭐야?"
그는 머그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머뭇대더니, 고개를 푹 떨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실은 선생님이 행방불명이라네."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 고성능 컴퓨터를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총선까지 불과 2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오기만 하면 당선된다는 '선상님'께서 자취를 감췄다는 뉴스는 정가에 핵폭탄과 같은 충격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거 정말 큰일이군." 나는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설마 납치를 당했다거나, 노인성 치매에 걸려 길을 잃고 실종됐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일이라면 진작에 경찰에 신고했겠지. 선생님께선 자진해서 종적을 감추셨다네. 말하자면 가출이지."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간의 정황을 설명했다.
오랜 숙적인 진보당을 물리치고 국회를 장악한 보수당 인사들은 승리의 환호성이 가라앉기도 전에 권력이란 이름의 파이를 독점하기 위해 치열한 내부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몇몇 명망 있는, 그러나 욕심 많은 정치가를 중심으로 당원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음해와 모략과 중상이 판을 쳤다. 사태는 나날이 격화되어 당은 쪼개지기 일보 직전의 위기에 몰렸고, 중립을 견지하며 파벌 싸움을 말리고자 동분서주하던 '선상님'은 지조 없는 비겁자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선생님께선 한동안 집에서 칩거하고 계셨지. 그런데 달포 전에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며 외출하시더니만, 그 길로 그냥 종적을 감춰 버리신 거야. 뒤늦게 책상 서랍을 뒤져 보니 '신물 나는 정치판을 떠나 당분간 잠적해 있을 테니 찾지 말아다오'란 메모가 남겨져 있더군."
"그거 참 무책임한 선생님이시군." 나는 신랄한 야유를 보냈다. "어쨌든 사람들을 풀어서 행방을 쫓고는 있겠지?"
"글쎄, 그런데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아. 도대체 어딜 가셨는지 짐작조차 안 되고, 언제쯤에나 돌아오실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어."
"안 됐군. 별 수 없이 이번 총선은 포기해야겠군. 내친 김에 선생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건 어떤가?"
최문식은 내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사적인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선생님 가족과 다른 보좌관들에겐 입막음을 시켰네. 선거운동도 예정대로 할 걸세."
"자네 제정신인가." 내 입에서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선거에 나갈 당사자도 없이 무슨 놈의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자네 도움을 청하는 것 아닌가? 선생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대역으로 내세울 게 필요하다네."
그제서야 나는 최문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선상님'을 대신할 로봇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자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해 두는 거지만, 오늘날의 로봇은 아직까지는 인간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어.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을 뿐이라고."
"선생님하고 꼭 닮을 필요는 없어. 겉모양과 말투만 얼추 비슷하면 된단 말일세. 어떻게든 이번 총선만 넘기게 도와 주게나."
"여보게, 본인이 정치하기 싫다고 도망친 거잖아. 대역까지 세우면서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있겠어?"
"무슨 소리야. 선생님께선 잠시 방황하고 계신 걸세. 이럴 때일수록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선생님께서 돌아오실 때를 대비해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준비해 둬야 한다네. 제발 도와 주게, 허교수."
그 터무니없는 충성심에는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지만, 김의원 사모님이 로봇의 제작비와 유지비를 전액 부담하는 것은 물론 거액의 연구비까지 지원해 줄 거라는 제안이 뒤따랐기에,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그의 요청을 승낙하기로 했다.
21세기 초반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한 로봇 공학은 세기말인 지금에 와선 원숙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재료공학자들은 내골격 소재로 적합한 강화 플라스틱과, 전자기 모터를 대신할 인공 근육을 만들 전기활성 고분자 물질, 그리고 솜털까지 재현한 인공 피부를 내놓았다. 전자공학자들은 인간의 오감에 근접하는 고감도 센서를, 에너지 공학자들은 대단히 효율 좋은 수소전지를 만들었다.
"문제는 아직까지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거야."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몇 년 전에 분자생물학자들이 유기체 세포를 이용한 DNA 컴퓨터를 개발했지만, 그 지능지수는 여전히 인간과는 비견할 수 없는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어느 정도 수준이길래 그러나?" 최문식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최대한 잘 쳐줘봐야 돌고래 정도. 어쩌면 그보다 좀 떨어질지도 모르지."
"그나마 흰개미보다 나은 게 다행이군." 내 친구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 같은데, 로봇 공학자는 조립만 하면 되는 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로봇은 조립식 장난감처럼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엄청나게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거야."
나는 로봇 공학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를 질타하며, 3층의 인공 지능 연구실로 향했다. 거기엔 넓은 작업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아직 외피(外皮)가 씌워지지 않은 채 마무리 작업을 기다리는 로봇이 누워 있었다.
"이게 우리 연구팀에서 개발중인 HM-12 인간형 로봇이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진공 청소기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깡통일 뿐이야. 여기에 내가 '가상 인격'을 프로그래밍해 넣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로봇으로 탈바꿈하는 거야."
나는 하얀 플라스틱과 새까만 고분자 물질과 형형색색의 전선이 뒤엉킨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장을 남김없이 드러낸 로봇의 알몸뚱이를 바라보던 최문식의 눈에 한 가닥 호기심이 떠올랐다.
"가상 인격은 또 뭔가?"
로봇 공학의 정수가 인공 지능이라면 가상 인격은 인공 지능 분야의 꽃이었고, 내가 10여 년에 걸쳐 연구한 과제이기도 했다. 거기 대해선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사흘 밤낮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울 자신도 있었지만, 무식한 정치가 친구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리하자니 말이 무척 짧아졌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로봇을 '선상님'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거라네."
"그래, 바로 그거야. 당장 그렇게 만들어 주게!"
나는 머리를 도리질 치며 손을 내밀었다.
"이봐, 땅을 파려면 삽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만들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자료가!"
최문식은 당장 행동에 나섰다. 그는 김형태 의원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상 기록부터 시작해서 후원자 목록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옥석을 가리지 않고 긁어 모았다. 그로부터 사흘간, 나는 밤을 꼬박 새워서 유기체 메모리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가상 인격의 근간을 이루는 '기억'을 구축해야 했다.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인격을 만들고 세세하게 다듬는 작업에 들어갔다.
"자네 선생님이 10년 전에 조기 축구회에서 만난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치세. 그런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 인사를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반응하실 것 같나?"
내가 그렇게 묻자, 최문식은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어설프게 아는 척 하는 대신에 솔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사과하셨겠지."
"그래, 그런 식으로 어떤 문제를 접했을 때 여러 가지 조건을 종합해서 분석하고 일련의 판단을 내리는 것을 '사고 방식'이라고 부르고, 직접 행동에 옮기는 것을 '행동 패턴'이라고 부르지. 가상 인격은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이 모이고 모여서 이뤄지는 거야."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다음에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능한 선생님을 닮은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을 구성하려면, 선생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자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네."
그리고 나와 최문식은 1주일 내내 머리를 맞대고 별의별 경우의 수를 궁리하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유세 도중에 지역구민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선생님이라면 밝게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시겠지."최문식은 재빨리 답했다.
"인공두뇌가 완전히 새로운 연설을 창조해 내는 건 불가능해. 예전에 했던 연설 중에서 짜깁기하는 수밖에 없을 텐데,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
그 질문에 노련한 비서관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이라면 보수층이 좋아할만한 사상 문제, 지역 유지가 환장할만한 개발 정책, 그리고 젊은이들을 싸잡아 욕하는 얘기를 적당히 섞어서 말씀하실 거야."
"그럼 후원자들과 은밀한 술자리에서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친구는 머리를 감싸 쥐고 한참 동안 앓는 소리를 내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진실을 고백했다.
"선생님이라면, 맥주와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어서 마신 다음에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시겠지."
"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장탄식을 했다.
그 동안, 내 밑에서 일하는 연구원 세 사람이 HM-12의 골격과 근육을 조정했다. 영상 자료에선 몸짓을, 음성 자료에선 목소리와 말투를 읽어 들여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형태 의원과 꼭 닮은 모양의 얼굴을 만들어 씌웠다.
최문식은 '선상님'을 쏙 빼닮은 로봇의 외모에 감탄하면서도 내심 걱정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 부하들이 설마 이 사실을 발설하진 않겠지?"
"걱정 붙들어 매게나. 모두 믿을만한 친구들인데다가 여기 대해선 한 마디도 누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으니까." 나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감히 내 명령에 거역했다간 국내외 어느 연구소에서도 대걸레 빠는 일조차 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밥줄 끊어지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어야지."
"어딜 가나 아랫사람은 고생이 많군." 최문식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하여 단 열흘 만에 김형태 의원을 대신할 로봇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편견에 가득 찬 취재원에게서 얻은 뉴스는 믿을만한 것이 아니듯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격은 대단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별 수 없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공지능이 적당히 판단하고 적당히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해야 했다. 물론 그렇게 완성된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은 돌고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최문식은 탐탁잖은 시선으로 로봇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저 녀석에게 정어리를 던져주면 공중제비를 돌면서 좋아서 끽끽댈지도 모르겠군."
"내가 돌고래와 인간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짤 것 같나? 공중제비 따위는 돌지 않을 거야. 다만 손뼉을 치며 좋아하겠지."
"저 돌아이에게 누군가 정어리를 던지지 않기만을 기도해야겠군."
최문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투덜거리는 그 순간, 로봇의 별명은 '돌아이'로 정해졌다.
다음날부터 로봇은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나섰다. 나는 만일에 있을지도 모를 이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최문식과 함께 그 곁을 따라다녔다.
로봇의 걸음걸이는 얼핏 보기엔 보통 사람과 비슷했지만 보폭과 속도가 지나치게 규칙적이라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챌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최문식은 로봇의 옆에 바짝 붙어서 번갈아 가며 어깨를 부딪히고 발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로봇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몸의 균형을 바로잡았고 멋모르는 구경꾼들은 우리를 손가락질했다.
"아니, 저 놈의 수행원들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놈들이길래 하늘 같은 상전을 떠받들지 못할망정 자꾸만 발을 걸고 넘어지는 거야? 저런 일을 당하고도 그냥 웃어넘기시다니, 하여간 '선상님'은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다니까."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로봇이 좋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수야 없었다. 비난의 시선을 피해 등을 돌리며 몰래 코웃음을 치는 게 고작이었다.
반응속도란 점에 있어서도 로봇은 사람보다 뒤처졌다. 뭔가를 물어보면 한 박자 쉬어간 다음에야 대답이 나왔고, 급한 일이 생겨도 굼뜨게 움직였다. 하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은 그 느려터진 행동거지를 침착함과 진중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하며 뛸 뜻이 좋아했다. 나는 인간의 사고 방식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기계적으로 가동되는 로봇의 내부 온도는 무척 높았기 때문에 냉각수를 순환시켜 그 체온을 인간과 비슷하게 맞춰야 했다. 선거의 열기로 달아오른 탓인지, 아니면 여름이 일찍 찾아온 탓인지, 그 해 봄은 무척 더웠다. 발뒤꿈치 쪽에는 냉각수를 식히는 냉매가 있었는데 거기에 집중적으로 이슬이 맺혔다. 그래서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가거나 하면 축축하게 젖은 양말이 바닥을 적셨는데, 어느 기자가 그걸 발견하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의원님 발은 어쩌다가 저렇게 젖은 겁니까?"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변명했다.
"실은 선생님께서 요실금 증세가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최문식은 나를 밀쳐내고 기자에게 허리를 숙이며 애원했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도 연세가 있으시니 어쩔 수 없지요. 이 건은 제발 기사화하지 말아 주십시오."
"예, 이런 것까지 일일이 기사로 실을 수야 없는 노릇이죠." 이제 막 사십 줄에 접어든 기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실은 저도 요실금 팬티를 입고 있는 형편이라서, 김의원님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먹고 마시는 걸 처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입으로 음식물을 씹어 삼키면 뱃속의 인공 위장이 그걸 분해하고 흡수해서, 유기체 메모리와 DNA 컴퓨터로 구성된 인공 두뇌에 영양분을 공급했다. 그런데 회식이니 만찬이니 연회니 하는 자리에 하도 자주 참석하다 보니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되었다. 불행히도 인공 항문처럼 고급스런 기능은 없었기에 남는 찌꺼기는 썩기 전에 입으로 뱉어내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정기적으로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을 토해내는 로봇의 등을 두들겨 주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헌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었으니 그것은 엄청난 주량이었다.
인공 위장은 영양분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일절 흡수하지 않았고, 인공 두뇌 또한 알코올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로봇은 목구멍이 찰랑거릴 때까지 술을 퍼먹고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로봇은 젊은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그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해 보였다. 수십 잔의 폭탄주가 돌고 눈동자가 풀린 젊은이들이 접시에 머리를 처박으며 침몰하는 와중에도 쭈글쭈글한 얼굴의 늙은이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신선처럼 유유히 술잔을 기울인 것이다. 그 터무니없는 주량에 압도당한 기자들은 '선상님'을 경외하는 대열에 합류해 호의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자란 것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술 실력인가 보군."
내가 그렇게 비아냥거리자 최문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탄했다.
"여하간 이놈의 나라에선 술만 잘 퍼먹으면 뭐든 잘 풀린다니까!"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로봇의 말투가 어눌한데다 말솜씨가 형편없다는 사실이었다. 녀석은 연단에 섰다 하면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하기 일쑤였다.
"우리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는데…… 나라를 살리기 위해선 진정한 보수가 나서야 하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여기저기 퍼주기만 하는 정부 예산을 축소하고…… 지역 공항 설비를 대폭 늘리고…… 진보를 부르짖는 얼빠진 젊은이들을 계도하고…… 낙동강 상수원의 공단을 모조리 쫓아내서 수질을 개선해고…… 그로써 지역 경제를 윤택하게 하고…… 보수 진영이 힘을 합쳐 헌정 질서를 수호하여…… 우리도 한 번 사람답게 잘 살아 봅시다!"
그것은 평범한 과학자가 배꼽을 잡고 웃어대고 충성스런 보좌관마저 얼굴이 핼쑥해질 정도로 엉망진창인 연설이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청중은 상기된 얼굴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비판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나와 최문식이 '돌아이'라 부르는 로봇은 '선상님'이란 애정 어린 연호를 받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경쟁자들의 지지율은 대공황 시대의 주가처럼 추락했다.
그리고 '선상님'은 전례 없는 표차를 기록하며 김해시 최초의 5선 의원이 되었다. 기세 등등한 남편이 없는 사이에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진 김의원 사모님은 약속대로 우리 연구팀에 거액의 지원금을 헌납해 줬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대역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라도 가만 있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국회 개원일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불구하고 김형태 의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회 등원을 사흘 앞두고 최문식은 정기점검 차 로봇을 데리고 연구실로 찾아왔다. 나는 로봇의 등짝을 열고 연료 전지를 교체하며 이렇게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녀석을 국회로 보낼 건가?"
"어쩌겠나. 당선까지 됐는데 안 나갈 수도 없잖아."
그는 자포자기한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로봇은 얼굴 가득 선거용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 연극은 한 번 시작하면 도중에 끝낼 수 없는 법이지!"
"그래, 맞아." 나는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 때 제일 싫어했던 게 학예회 연극이었다고."
국회가 열리고 의원들은 화기애애하게 악수를 나누며 TV 카메라 앞에서 새로 맞춘 양복을 뽐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소수파로 전락한 진보당은 다른 군소 정당들과 힘을 합쳐 보수당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위기 의식에 휩싸인 보수당 인사들은 서둘러 내분을 봉합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해묵은, 그러나 사소한 원한에서 비롯된 정쟁(政爭)에 불이 붙으면서 국회는 시작부터 파행을 거듭했다. 의원들은 진지한 토론을 외면하고 세비를 챙기고 뒷돈을 받아먹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 와중에 로봇의 존재감은 단연 눈에 띄는 것이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속한 보수당이 저돌적으로 추진하던 감세 정책을 과감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적게 버는 사람이 많이 내고 많이 버는 사람이 적게 내는 게 옳다는 주장은 대단히 비논리적입니다. 이미 21세기 초에 미국에서 그런 짓 하다가 기둥뿌리가 뽑힐 뻔했죠."
그리고 진보당이 주도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미키 마우스가 나온 지도 벌써 백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저 양키 쥐새끼의 저작권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겁니까?"
문제의 핵심을 우둔하리만치 정면으로 꿰뚫는 지적에 그럴싸한 거짓말과 변명으로 보기 좋게 포장된 법률은 돌고래가 물어뜯은 정어리처럼 산산조각으로 해체되었다. 동료 의원들은 얼굴을 붉혔고 매스컴은 그의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경상도 일대에 난데 없는 폭우가 쏟아져 큰 수해가 일어났다. 최문식은 '선상님'이 지역구에 내려가 주민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장시간 활동하면 로봇의 가동부가 고장 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사적으로 최문식을 뜯어 말렸다.
다른 의원들은 앞다투어 경상도로 발길을 옮겼건만 존경 받는 '선상님'이 서울에서 문기적대고 있다는 사실은 매스컴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모 TV 방송국에서 생방송 인터뷰를 신청해 왔다. 도저히 거절할 핑계가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김의원님, 의원님께선 어째서 지역구로 내려가시지 않는 겁니까?"
진행자는 인터뷰 초반부터 가시 돋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로봇은 동요하지 않고 느끼한 접대용 미소를 지으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 그건 말입니다. 제가 내려가 봐야 복구 활동에 방해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 할 일을 하느니만 못하죠."
우리는 물론 진행자마저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해 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엄청난 충격이 전국을 강타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저렇게 정직한 국회의원이 존재했다니!"
지역구민들은 가슴을 내밀고 자랑스럽게 외쳤다.
"저 분이 바로 우리 선상님이셔!"
수해 현장을 시찰하던 의원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했다.
"저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그 일을 계기로 '선상님'의 인기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늙은 보수주의자들은 고색창연한 발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젊은 진보주의자들은 거침없는 행동에 매료되었다. 직장인은 후원회를 결성했고 학생들은 팬클럽을 만들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기에 이르렀고 가을철에는 여러 TV 토론회에 단골처럼 얼굴을 들이밀게 되었다. 로봇은 우직함과 정직함을 무기로 삼아 톡톡 튀는 재치를 자랑하는 패널들을 물리쳤다. 객관적인 논평으로 이름 높은 토론회 진행자는 이렇게 단언했다.
"저렇게 솔직하고 일관성 있는 정치가는 난생 처음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진짜 김형태 의원이 예고도 없이 돌아온 것이었다.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최문식은 쏜살같이 달려가 '선상님' 앞에 넙죽 엎드렸다. 몸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얼굴은 초췌해졌지만, 김의원의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네한텐 정말 몹쓸 짓을 했네그려. 걱정 많이 끼쳐서 미안하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자 하니, 그 동안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조그만 암자에서 면벽수행을 하기도 하고 지방의 소도시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뒹굴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의원은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네. 앞으로는 보수와 진보라는 편협한 정파를 초월해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칠 생각이야." 그러더니 궁금하다는 듯이 최문식을 쳐다봤다. "헌데 쓰레기통에서 신문을 주워 읽노라니 내가 여전히 국회의원을 하는 걸로 나오더군.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건가?"
최문식은 김의원에게 날 소개해 줬고 나는 로봇을 끌고 나와 그간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김의원은 감탄과 경이가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로봇을 응시하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다.
"허교수님 덕분에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제가 정계로 돌아가면 잊지 않고 교수님 뒤를 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저야말로 고맙죠. 그나저나 저 로봇은 이제 어쩔까요?"
내 물음에 대답한 것은 최문식이었다.
"저 돌아이 녀석은 더는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 몰래 자네 연구실에 숨겨 두게나."
로봇은 차디찬 업무용 미소를 지으며 현실을 정확하게 요약했다.
"이게 바로 토사구팽이란 거군!"
다음날부터 김형태 의원은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보수당과 진보당의 기존 정책을 현실과 괴리된 것이라 비판하며 연일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넓은 시야로 국토 균형 개발을 제안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육 개혁을 지지하고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세제 개혁에 찬성했다. 돈을 물쓰듯 하던 마누라와 드잡이 질을 벌이고 TV 토론회에선 깊은 학식과 현란한 말 솜씨를 뽐내며 상대방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그 결과, 김형태 의원의 지지율은 극적으로 떨어졌다.
TV 토론회 진행자는 그의 정치적 변신을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지 않았다.
"김의원께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다가는 옷이 찢어진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열렬한 보수당원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부르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냉소적인 진보당원들은 김의원이 양다리를 걸친 창녀 같다며 비웃었다. 매스컴이 등을 돌렸고 악의적인 여론이 들끓고 후원회와 팬클럽 회원 숫자가 격감했다. 여전히 충성스런 소수의 지지자들만이 '선상님'의 변화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조만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선상님'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이대로 간다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기도 전에 당에서 쫓겨나게 생겼군."
지난 몇 달 간의 강행군 끝에 성과를 거두긴커녕 크나큰 손실만 입은 김의원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침음했다.
"안 그래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제가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몇몇 당원들이 비밀리에 총재에게 선생님의 출당을 건의하고 있다는군요."
최문식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김의원의 얼굴은 납빛으로 변했다.
"정말이지, 이놈의 정치판엔 의리고 뭐고 없군.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최문식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한 번 사람답게 잘 살아 봅시다!"
로봇이 비장한 사자후를 내뱉으며 연설을 끝마치자 청중이 요란한 박수 갈채를 보냈다. 개중에는 치솟는 감동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아줌마도 있었고, 우렁찬 목소리로 '선상님'의 이름을 외치는 청년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대성공이었다.
최문식의 요청으로 나는 창고에 처박아 뒀던 로봇의 먼지를 털고 연료 전지를 주입했다. 로봇이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면서 김형태 의원은 뒷짐을 지고 물러나 몸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봇은 이전의 인기를 되찾고 당내에서 달리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는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신문과 방송에선 '정치 9단'을 능가하는 '정치의 대가'라는 수식어로 김의원의 이름을 장식해 줬다.
"대관절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네그려."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눌러쓴 진짜 김의원은 한산한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형 입체 TV로 연설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희뿌연 홀로그램에서 눈을 떼고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혀를 끌끌 찼다.
"어째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성적인 비판엔 귀를 막고 합리적인 정책은 거부하고, 저렇게 영양가 없는 연설에는 눈이 뒤집히도록 환장하는 걸까?"
동석하고 있던 나는 원두 커피를 홀짝이며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결국, 대중이 원하는 건 정어리를 주면 빙글빙글 돌면서 좋아하는 돌고래 수준의 정치가란 뜻이겠죠."
"정말 기막힐 노릇이군. 대체 어떻게 해야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
뒤늦게 나타난 최문식이 김의원의 한탄을 듣더니 자리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저 사람들은 당분간 저렇게 놔 두는 편이 좋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최문식은 입가에 냉정한 웃음을 띄우더니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야 선생님께서 대선 후보가 되실 것 아닙니까? 이 나라와 대중을 바른 방향으로 계도하는 건 대권을 쥔 다음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의원은 입맛을 다시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지만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로봇이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동차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중계 방송이 끝나고 흥겨운 음악과 함께 광고 화면이 흘렀다. 최문식은 TV를 껐고, 우리는 짧은 침묵의 여운을 음미하며 일제히 찻잔을 기울였다.
"그나저나 최군, 자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뭔가 보답을 해 줘야겠지." 김의원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최문식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일 저 녀석이 대선 후보가 되면 내 선거구는 자네한테 물려주도록 하겠네."
"저한테 선생님의 선거구를 주시겠다고요?" 최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네. 이제 자네도 정치가로 나설 때가 되지 않았나? 내가 뒤를 봐 줄 테니 다음 선거 때 아무 걱정하지 출마하도록 하게나."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최문식은 크게 감격해서 허리가 부러져라 큰절을 올렸고 김의원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인사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네. 그보다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밑 준비를 하게나. 이제 다음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3년도 남지 않았으니까 말일세."
"그건 걱정 마십시오. 준비는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러더니 그는 은근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었다. 당분간 이 일에서 발을 빼긴 어렵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뭐, 자네가 원한다면야 또 만들지 못할 것도 없지. 아마도 그때까진 가상 인격을 좀 더 개량할 수 있을 거야. 인공지능도 어쩌면 침팬지 수준까진 올라갈 테고."
"아니, 더 잘 만들 필요는 없어."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지금 정도면 충분해. 충분하다고!"
<<끝>>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에서
어째서 사람들이 계속하여 한나라당을 찍어주는가에 대한 개인적 고찰과 논리적 해답,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의 대가>>
펼쳐보기..
"제발 좀 도와주게."
최문식은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쥐어짜는 듯이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강원도 깡촌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불알친구였다. 짧은 소년기를 마감하고 서울에 올라와 청년기로 접어든 뒤로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자 다른 길로 갈라졌다. 나는 로봇 공학자가 되어 대학 연구소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는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들어 부평초처럼 떠돌아 다녔다.
하지만 5년 전, 최문식은 경상도 김해시에서 '선상님'으로 통하는 4선 의원, 김형태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오랜 정치적인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자신의 행정력을 인정해 준 '선상님'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봉사했고, 그 충성심을 인정받아 재작년엔 수석 비서관으로 승진했다. 그때부터 눈코 뜰새 없이 바빠져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 친구가 난데없이 연구실에 찾아와 애원하는 말을 늘어놓으니, 나로서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이봐, 갑자기 뭘 도와달라는 거야? 설마 보증 서 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나?"
"아니, 그런 건 아냐."
빛 보증 부탁이라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 몰라 전정 긍긍하던 나는 다행이다 싶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뭔가? '선상님' 표라도 모아달라는 건가? 미리 말해 두겠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난 경상도 쪽엔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아니, 그것도 아냐."
"돈 문제도 아니고 표 문제도 아니라면 대체 뭐야?"
그는 머그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머뭇대더니, 고개를 푹 떨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실은 선생님이 행방불명이라네."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 고성능 컴퓨터를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총선까지 불과 2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오기만 하면 당선된다는 '선상님'께서 자취를 감췄다는 뉴스는 정가에 핵폭탄과 같은 충격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거 정말 큰일이군." 나는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설마 납치를 당했다거나, 노인성 치매에 걸려 길을 잃고 실종됐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일이라면 진작에 경찰에 신고했겠지. 선생님께선 자진해서 종적을 감추셨다네. 말하자면 가출이지."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간의 정황을 설명했다.
오랜 숙적인 진보당을 물리치고 국회를 장악한 보수당 인사들은 승리의 환호성이 가라앉기도 전에 권력이란 이름의 파이를 독점하기 위해 치열한 내부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몇몇 명망 있는, 그러나 욕심 많은 정치가를 중심으로 당원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음해와 모략과 중상이 판을 쳤다. 사태는 나날이 격화되어 당은 쪼개지기 일보 직전의 위기에 몰렸고, 중립을 견지하며 파벌 싸움을 말리고자 동분서주하던 '선상님'은 지조 없는 비겁자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선생님께선 한동안 집에서 칩거하고 계셨지. 그런데 달포 전에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며 외출하시더니만, 그 길로 그냥 종적을 감춰 버리신 거야. 뒤늦게 책상 서랍을 뒤져 보니 '신물 나는 정치판을 떠나 당분간 잠적해 있을 테니 찾지 말아다오'란 메모가 남겨져 있더군."
"그거 참 무책임한 선생님이시군." 나는 신랄한 야유를 보냈다. "어쨌든 사람들을 풀어서 행방을 쫓고는 있겠지?"
"글쎄, 그런데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아. 도대체 어딜 가셨는지 짐작조차 안 되고, 언제쯤에나 돌아오실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어."
"안 됐군. 별 수 없이 이번 총선은 포기해야겠군. 내친 김에 선생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건 어떤가?"
최문식은 내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사적인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선생님 가족과 다른 보좌관들에겐 입막음을 시켰네. 선거운동도 예정대로 할 걸세."
"자네 제정신인가." 내 입에서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선거에 나갈 당사자도 없이 무슨 놈의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자네 도움을 청하는 것 아닌가? 선생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대역으로 내세울 게 필요하다네."
그제서야 나는 최문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선상님'을 대신할 로봇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자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해 두는 거지만, 오늘날의 로봇은 아직까지는 인간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어.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을 뿐이라고."
"선생님하고 꼭 닮을 필요는 없어. 겉모양과 말투만 얼추 비슷하면 된단 말일세. 어떻게든 이번 총선만 넘기게 도와 주게나."
"여보게, 본인이 정치하기 싫다고 도망친 거잖아. 대역까지 세우면서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있겠어?"
"무슨 소리야. 선생님께선 잠시 방황하고 계신 걸세. 이럴 때일수록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선생님께서 돌아오실 때를 대비해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준비해 둬야 한다네. 제발 도와 주게, 허교수."
그 터무니없는 충성심에는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지만, 김의원 사모님이 로봇의 제작비와 유지비를 전액 부담하는 것은 물론 거액의 연구비까지 지원해 줄 거라는 제안이 뒤따랐기에,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그의 요청을 승낙하기로 했다.
21세기 초반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한 로봇 공학은 세기말인 지금에 와선 원숙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재료공학자들은 내골격 소재로 적합한 강화 플라스틱과, 전자기 모터를 대신할 인공 근육을 만들 전기활성 고분자 물질, 그리고 솜털까지 재현한 인공 피부를 내놓았다. 전자공학자들은 인간의 오감에 근접하는 고감도 센서를, 에너지 공학자들은 대단히 효율 좋은 수소전지를 만들었다.
"문제는 아직까지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거야."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몇 년 전에 분자생물학자들이 유기체 세포를 이용한 DNA 컴퓨터를 개발했지만, 그 지능지수는 여전히 인간과는 비견할 수 없는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어느 정도 수준이길래 그러나?" 최문식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최대한 잘 쳐줘봐야 돌고래 정도. 어쩌면 그보다 좀 떨어질지도 모르지."
"그나마 흰개미보다 나은 게 다행이군." 내 친구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 같은데, 로봇 공학자는 조립만 하면 되는 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로봇은 조립식 장난감처럼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엄청나게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거야."
나는 로봇 공학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를 질타하며, 3층의 인공 지능 연구실로 향했다. 거기엔 넓은 작업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아직 외피(外皮)가 씌워지지 않은 채 마무리 작업을 기다리는 로봇이 누워 있었다.
"이게 우리 연구팀에서 개발중인 HM-12 인간형 로봇이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진공 청소기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깡통일 뿐이야. 여기에 내가 '가상 인격'을 프로그래밍해 넣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로봇으로 탈바꿈하는 거야."
나는 하얀 플라스틱과 새까만 고분자 물질과 형형색색의 전선이 뒤엉킨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장을 남김없이 드러낸 로봇의 알몸뚱이를 바라보던 최문식의 눈에 한 가닥 호기심이 떠올랐다.
"가상 인격은 또 뭔가?"
로봇 공학의 정수가 인공 지능이라면 가상 인격은 인공 지능 분야의 꽃이었고, 내가 10여 년에 걸쳐 연구한 과제이기도 했다. 거기 대해선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사흘 밤낮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울 자신도 있었지만, 무식한 정치가 친구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리하자니 말이 무척 짧아졌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로봇을 '선상님'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거라네."
"그래, 바로 그거야. 당장 그렇게 만들어 주게!"
나는 머리를 도리질 치며 손을 내밀었다.
"이봐, 땅을 파려면 삽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만들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자료가!"
최문식은 당장 행동에 나섰다. 그는 김형태 의원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상 기록부터 시작해서 후원자 목록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옥석을 가리지 않고 긁어 모았다. 그로부터 사흘간, 나는 밤을 꼬박 새워서 유기체 메모리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가상 인격의 근간을 이루는 '기억'을 구축해야 했다.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인격을 만들고 세세하게 다듬는 작업에 들어갔다.
"자네 선생님이 10년 전에 조기 축구회에서 만난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치세. 그런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 인사를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반응하실 것 같나?"
내가 그렇게 묻자, 최문식은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어설프게 아는 척 하는 대신에 솔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사과하셨겠지."
"그래, 그런 식으로 어떤 문제를 접했을 때 여러 가지 조건을 종합해서 분석하고 일련의 판단을 내리는 것을 '사고 방식'이라고 부르고, 직접 행동에 옮기는 것을 '행동 패턴'이라고 부르지. 가상 인격은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이 모이고 모여서 이뤄지는 거야."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다음에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능한 선생님을 닮은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을 구성하려면, 선생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자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네."
그리고 나와 최문식은 1주일 내내 머리를 맞대고 별의별 경우의 수를 궁리하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유세 도중에 지역구민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선생님이라면 밝게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시겠지."최문식은 재빨리 답했다.
"인공두뇌가 완전히 새로운 연설을 창조해 내는 건 불가능해. 예전에 했던 연설 중에서 짜깁기하는 수밖에 없을 텐데,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
그 질문에 노련한 비서관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이라면 보수층이 좋아할만한 사상 문제, 지역 유지가 환장할만한 개발 정책, 그리고 젊은이들을 싸잡아 욕하는 얘기를 적당히 섞어서 말씀하실 거야."
"그럼 후원자들과 은밀한 술자리에서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친구는 머리를 감싸 쥐고 한참 동안 앓는 소리를 내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진실을 고백했다.
"선생님이라면, 맥주와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어서 마신 다음에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시겠지."
"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장탄식을 했다.
그 동안, 내 밑에서 일하는 연구원 세 사람이 HM-12의 골격과 근육을 조정했다. 영상 자료에선 몸짓을, 음성 자료에선 목소리와 말투를 읽어 들여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형태 의원과 꼭 닮은 모양의 얼굴을 만들어 씌웠다.
최문식은 '선상님'을 쏙 빼닮은 로봇의 외모에 감탄하면서도 내심 걱정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 부하들이 설마 이 사실을 발설하진 않겠지?"
"걱정 붙들어 매게나. 모두 믿을만한 친구들인데다가 여기 대해선 한 마디도 누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으니까." 나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감히 내 명령에 거역했다간 국내외 어느 연구소에서도 대걸레 빠는 일조차 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밥줄 끊어지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어야지."
"어딜 가나 아랫사람은 고생이 많군." 최문식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하여 단 열흘 만에 김형태 의원을 대신할 로봇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편견에 가득 찬 취재원에게서 얻은 뉴스는 믿을만한 것이 아니듯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격은 대단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별 수 없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공지능이 적당히 판단하고 적당히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해야 했다. 물론 그렇게 완성된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은 돌고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최문식은 탐탁잖은 시선으로 로봇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저 녀석에게 정어리를 던져주면 공중제비를 돌면서 좋아서 끽끽댈지도 모르겠군."
"내가 돌고래와 인간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짤 것 같나? 공중제비 따위는 돌지 않을 거야. 다만 손뼉을 치며 좋아하겠지."
"저 돌아이에게 누군가 정어리를 던지지 않기만을 기도해야겠군."
최문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투덜거리는 그 순간, 로봇의 별명은 '돌아이'로 정해졌다.
다음날부터 로봇은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나섰다. 나는 만일에 있을지도 모를 이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최문식과 함께 그 곁을 따라다녔다.
로봇의 걸음걸이는 얼핏 보기엔 보통 사람과 비슷했지만 보폭과 속도가 지나치게 규칙적이라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챌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최문식은 로봇의 옆에 바짝 붙어서 번갈아 가며 어깨를 부딪히고 발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로봇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몸의 균형을 바로잡았고 멋모르는 구경꾼들은 우리를 손가락질했다.
"아니, 저 놈의 수행원들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놈들이길래 하늘 같은 상전을 떠받들지 못할망정 자꾸만 발을 걸고 넘어지는 거야? 저런 일을 당하고도 그냥 웃어넘기시다니, 하여간 '선상님'은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다니까."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로봇이 좋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수야 없었다. 비난의 시선을 피해 등을 돌리며 몰래 코웃음을 치는 게 고작이었다.
반응속도란 점에 있어서도 로봇은 사람보다 뒤처졌다. 뭔가를 물어보면 한 박자 쉬어간 다음에야 대답이 나왔고, 급한 일이 생겨도 굼뜨게 움직였다. 하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은 그 느려터진 행동거지를 침착함과 진중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하며 뛸 뜻이 좋아했다. 나는 인간의 사고 방식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기계적으로 가동되는 로봇의 내부 온도는 무척 높았기 때문에 냉각수를 순환시켜 그 체온을 인간과 비슷하게 맞춰야 했다. 선거의 열기로 달아오른 탓인지, 아니면 여름이 일찍 찾아온 탓인지, 그 해 봄은 무척 더웠다. 발뒤꿈치 쪽에는 냉각수를 식히는 냉매가 있었는데 거기에 집중적으로 이슬이 맺혔다. 그래서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가거나 하면 축축하게 젖은 양말이 바닥을 적셨는데, 어느 기자가 그걸 발견하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의원님 발은 어쩌다가 저렇게 젖은 겁니까?"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변명했다.
"실은 선생님께서 요실금 증세가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최문식은 나를 밀쳐내고 기자에게 허리를 숙이며 애원했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도 연세가 있으시니 어쩔 수 없지요. 이 건은 제발 기사화하지 말아 주십시오."
"예, 이런 것까지 일일이 기사로 실을 수야 없는 노릇이죠." 이제 막 사십 줄에 접어든 기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실은 저도 요실금 팬티를 입고 있는 형편이라서, 김의원님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먹고 마시는 걸 처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입으로 음식물을 씹어 삼키면 뱃속의 인공 위장이 그걸 분해하고 흡수해서, 유기체 메모리와 DNA 컴퓨터로 구성된 인공 두뇌에 영양분을 공급했다. 그런데 회식이니 만찬이니 연회니 하는 자리에 하도 자주 참석하다 보니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되었다. 불행히도 인공 항문처럼 고급스런 기능은 없었기에 남는 찌꺼기는 썩기 전에 입으로 뱉어내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정기적으로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을 토해내는 로봇의 등을 두들겨 주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헌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었으니 그것은 엄청난 주량이었다.
인공 위장은 영양분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일절 흡수하지 않았고, 인공 두뇌 또한 알코올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로봇은 목구멍이 찰랑거릴 때까지 술을 퍼먹고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로봇은 젊은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그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해 보였다. 수십 잔의 폭탄주가 돌고 눈동자가 풀린 젊은이들이 접시에 머리를 처박으며 침몰하는 와중에도 쭈글쭈글한 얼굴의 늙은이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신선처럼 유유히 술잔을 기울인 것이다. 그 터무니없는 주량에 압도당한 기자들은 '선상님'을 경외하는 대열에 합류해 호의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자란 것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술 실력인가 보군."
내가 그렇게 비아냥거리자 최문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탄했다.
"여하간 이놈의 나라에선 술만 잘 퍼먹으면 뭐든 잘 풀린다니까!"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로봇의 말투가 어눌한데다 말솜씨가 형편없다는 사실이었다. 녀석은 연단에 섰다 하면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하기 일쑤였다.
"우리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는데…… 나라를 살리기 위해선 진정한 보수가 나서야 하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여기저기 퍼주기만 하는 정부 예산을 축소하고…… 지역 공항 설비를 대폭 늘리고…… 진보를 부르짖는 얼빠진 젊은이들을 계도하고…… 낙동강 상수원의 공단을 모조리 쫓아내서 수질을 개선해고…… 그로써 지역 경제를 윤택하게 하고…… 보수 진영이 힘을 합쳐 헌정 질서를 수호하여…… 우리도 한 번 사람답게 잘 살아 봅시다!"
그것은 평범한 과학자가 배꼽을 잡고 웃어대고 충성스런 보좌관마저 얼굴이 핼쑥해질 정도로 엉망진창인 연설이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청중은 상기된 얼굴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비판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나와 최문식이 '돌아이'라 부르는 로봇은 '선상님'이란 애정 어린 연호를 받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경쟁자들의 지지율은 대공황 시대의 주가처럼 추락했다.
그리고 '선상님'은 전례 없는 표차를 기록하며 김해시 최초의 5선 의원이 되었다. 기세 등등한 남편이 없는 사이에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진 김의원 사모님은 약속대로 우리 연구팀에 거액의 지원금을 헌납해 줬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대역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라도 가만 있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국회 개원일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불구하고 김형태 의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회 등원을 사흘 앞두고 최문식은 정기점검 차 로봇을 데리고 연구실로 찾아왔다. 나는 로봇의 등짝을 열고 연료 전지를 교체하며 이렇게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녀석을 국회로 보낼 건가?"
"어쩌겠나. 당선까지 됐는데 안 나갈 수도 없잖아."
그는 자포자기한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로봇은 얼굴 가득 선거용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 연극은 한 번 시작하면 도중에 끝낼 수 없는 법이지!"
"그래, 맞아." 나는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 때 제일 싫어했던 게 학예회 연극이었다고."
국회가 열리고 의원들은 화기애애하게 악수를 나누며 TV 카메라 앞에서 새로 맞춘 양복을 뽐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소수파로 전락한 진보당은 다른 군소 정당들과 힘을 합쳐 보수당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위기 의식에 휩싸인 보수당 인사들은 서둘러 내분을 봉합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해묵은, 그러나 사소한 원한에서 비롯된 정쟁(政爭)에 불이 붙으면서 국회는 시작부터 파행을 거듭했다. 의원들은 진지한 토론을 외면하고 세비를 챙기고 뒷돈을 받아먹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 와중에 로봇의 존재감은 단연 눈에 띄는 것이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속한 보수당이 저돌적으로 추진하던 감세 정책을 과감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적게 버는 사람이 많이 내고 많이 버는 사람이 적게 내는 게 옳다는 주장은 대단히 비논리적입니다. 이미 21세기 초에 미국에서 그런 짓 하다가 기둥뿌리가 뽑힐 뻔했죠."
그리고 진보당이 주도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미키 마우스가 나온 지도 벌써 백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저 양키 쥐새끼의 저작권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겁니까?"
문제의 핵심을 우둔하리만치 정면으로 꿰뚫는 지적에 그럴싸한 거짓말과 변명으로 보기 좋게 포장된 법률은 돌고래가 물어뜯은 정어리처럼 산산조각으로 해체되었다. 동료 의원들은 얼굴을 붉혔고 매스컴은 그의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경상도 일대에 난데 없는 폭우가 쏟아져 큰 수해가 일어났다. 최문식은 '선상님'이 지역구에 내려가 주민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장시간 활동하면 로봇의 가동부가 고장 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사적으로 최문식을 뜯어 말렸다.
다른 의원들은 앞다투어 경상도로 발길을 옮겼건만 존경 받는 '선상님'이 서울에서 문기적대고 있다는 사실은 매스컴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모 TV 방송국에서 생방송 인터뷰를 신청해 왔다. 도저히 거절할 핑계가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김의원님, 의원님께선 어째서 지역구로 내려가시지 않는 겁니까?"
진행자는 인터뷰 초반부터 가시 돋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로봇은 동요하지 않고 느끼한 접대용 미소를 지으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 그건 말입니다. 제가 내려가 봐야 복구 활동에 방해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 할 일을 하느니만 못하죠."
우리는 물론 진행자마저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해 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엄청난 충격이 전국을 강타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저렇게 정직한 국회의원이 존재했다니!"
지역구민들은 가슴을 내밀고 자랑스럽게 외쳤다.
"저 분이 바로 우리 선상님이셔!"
수해 현장을 시찰하던 의원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했다.
"저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그 일을 계기로 '선상님'의 인기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늙은 보수주의자들은 고색창연한 발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젊은 진보주의자들은 거침없는 행동에 매료되었다. 직장인은 후원회를 결성했고 학생들은 팬클럽을 만들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기에 이르렀고 가을철에는 여러 TV 토론회에 단골처럼 얼굴을 들이밀게 되었다. 로봇은 우직함과 정직함을 무기로 삼아 톡톡 튀는 재치를 자랑하는 패널들을 물리쳤다. 객관적인 논평으로 이름 높은 토론회 진행자는 이렇게 단언했다.
"저렇게 솔직하고 일관성 있는 정치가는 난생 처음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진짜 김형태 의원이 예고도 없이 돌아온 것이었다.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최문식은 쏜살같이 달려가 '선상님' 앞에 넙죽 엎드렸다. 몸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얼굴은 초췌해졌지만, 김의원의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네한텐 정말 몹쓸 짓을 했네그려. 걱정 많이 끼쳐서 미안하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자 하니, 그 동안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조그만 암자에서 면벽수행을 하기도 하고 지방의 소도시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뒹굴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의원은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네. 앞으로는 보수와 진보라는 편협한 정파를 초월해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칠 생각이야." 그러더니 궁금하다는 듯이 최문식을 쳐다봤다. "헌데 쓰레기통에서 신문을 주워 읽노라니 내가 여전히 국회의원을 하는 걸로 나오더군.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건가?"
최문식은 김의원에게 날 소개해 줬고 나는 로봇을 끌고 나와 그간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김의원은 감탄과 경이가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로봇을 응시하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다.
"허교수님 덕분에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제가 정계로 돌아가면 잊지 않고 교수님 뒤를 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저야말로 고맙죠. 그나저나 저 로봇은 이제 어쩔까요?"
내 물음에 대답한 것은 최문식이었다.
"저 돌아이 녀석은 더는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 몰래 자네 연구실에 숨겨 두게나."
로봇은 차디찬 업무용 미소를 지으며 현실을 정확하게 요약했다.
"이게 바로 토사구팽이란 거군!"
다음날부터 김형태 의원은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보수당과 진보당의 기존 정책을 현실과 괴리된 것이라 비판하며 연일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넓은 시야로 국토 균형 개발을 제안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육 개혁을 지지하고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세제 개혁에 찬성했다. 돈을 물쓰듯 하던 마누라와 드잡이 질을 벌이고 TV 토론회에선 깊은 학식과 현란한 말 솜씨를 뽐내며 상대방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그 결과, 김형태 의원의 지지율은 극적으로 떨어졌다.
TV 토론회 진행자는 그의 정치적 변신을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지 않았다.
"김의원께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다가는 옷이 찢어진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열렬한 보수당원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부르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냉소적인 진보당원들은 김의원이 양다리를 걸친 창녀 같다며 비웃었다. 매스컴이 등을 돌렸고 악의적인 여론이 들끓고 후원회와 팬클럽 회원 숫자가 격감했다. 여전히 충성스런 소수의 지지자들만이 '선상님'의 변화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조만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선상님'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이대로 간다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기도 전에 당에서 쫓겨나게 생겼군."
지난 몇 달 간의 강행군 끝에 성과를 거두긴커녕 크나큰 손실만 입은 김의원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침음했다.
"안 그래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제가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몇몇 당원들이 비밀리에 총재에게 선생님의 출당을 건의하고 있다는군요."
최문식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김의원의 얼굴은 납빛으로 변했다.
"정말이지, 이놈의 정치판엔 의리고 뭐고 없군.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최문식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한 번 사람답게 잘 살아 봅시다!"
로봇이 비장한 사자후를 내뱉으며 연설을 끝마치자 청중이 요란한 박수 갈채를 보냈다. 개중에는 치솟는 감동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아줌마도 있었고, 우렁찬 목소리로 '선상님'의 이름을 외치는 청년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대성공이었다.
최문식의 요청으로 나는 창고에 처박아 뒀던 로봇의 먼지를 털고 연료 전지를 주입했다. 로봇이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면서 김형태 의원은 뒷짐을 지고 물러나 몸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봇은 이전의 인기를 되찾고 당내에서 달리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는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신문과 방송에선 '정치 9단'을 능가하는 '정치의 대가'라는 수식어로 김의원의 이름을 장식해 줬다.
"대관절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네그려."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눌러쓴 진짜 김의원은 한산한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형 입체 TV로 연설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희뿌연 홀로그램에서 눈을 떼고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혀를 끌끌 찼다.
"어째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성적인 비판엔 귀를 막고 합리적인 정책은 거부하고, 저렇게 영양가 없는 연설에는 눈이 뒤집히도록 환장하는 걸까?"
동석하고 있던 나는 원두 커피를 홀짝이며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결국, 대중이 원하는 건 정어리를 주면 빙글빙글 돌면서 좋아하는 돌고래 수준의 정치가란 뜻이겠죠."
"정말 기막힐 노릇이군. 대체 어떻게 해야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
뒤늦게 나타난 최문식이 김의원의 한탄을 듣더니 자리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저 사람들은 당분간 저렇게 놔 두는 편이 좋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최문식은 입가에 냉정한 웃음을 띄우더니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야 선생님께서 대선 후보가 되실 것 아닙니까? 이 나라와 대중을 바른 방향으로 계도하는 건 대권을 쥔 다음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의원은 입맛을 다시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지만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로봇이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동차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중계 방송이 끝나고 흥겨운 음악과 함께 광고 화면이 흘렀다. 최문식은 TV를 껐고, 우리는 짧은 침묵의 여운을 음미하며 일제히 찻잔을 기울였다.
"그나저나 최군, 자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뭔가 보답을 해 줘야겠지." 김의원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최문식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일 저 녀석이 대선 후보가 되면 내 선거구는 자네한테 물려주도록 하겠네."
"저한테 선생님의 선거구를 주시겠다고요?" 최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네. 이제 자네도 정치가로 나설 때가 되지 않았나? 내가 뒤를 봐 줄 테니 다음 선거 때 아무 걱정하지 출마하도록 하게나."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최문식은 크게 감격해서 허리가 부러져라 큰절을 올렸고 김의원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인사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네. 그보다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밑 준비를 하게나. 이제 다음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3년도 남지 않았으니까 말일세."
"그건 걱정 마십시오. 준비는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러더니 그는 은근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었다. 당분간 이 일에서 발을 빼긴 어렵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뭐, 자네가 원한다면야 또 만들지 못할 것도 없지. 아마도 그때까진 가상 인격을 좀 더 개량할 수 있을 거야. 인공지능도 어쩌면 침팬지 수준까진 올라갈 테고."
"아니, 더 잘 만들 필요는 없어."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지금 정도면 충분해. 충분하다고!"
<<끝>>
2006/08/20 13:24
2006/08/20 13:24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언제나 생각해왔지만 최고입니다. 김해시에서 이 소설에 찬사를 보낼지 악플을 보낼지 궁금하군요 ^^; (오랜만에 뵙습니다~)
dcdc님> 지나친 과찬이십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지금 정도면 충분해. 충분하다고!"
정말로 저 대사에 뻥하고 머리가 뚫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