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한다. 나도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이해한다. 히트수가 쭉쭉 올라가고 회원수가 짱짱하게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돈벌이는 안되는 인터넷 사업을 붙잡고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한다.
사실 나는 이글루스 플러스도 쓰지 않았고, 소위 키 블로거도 아니다. 이글루스에서 돈 주고 산 거라곤 2006년도 이글루 캘린더 2벌이 전부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글루스는 수많은 사용자들이 쌓은 개인 자산, 컨텐츠를 담보로 해서 SK 커뮤니케이션(SKCS)에 자신을 비싼 값에 팔아치웠다. 그 사용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할 말은 해야겠다.
이글루스 운영진들은 SKCS로 이관된 다음에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네이트닷컴이 이글루스를 영업양수한 이유라는 기사에서 언급한, 당사자들간의 합의를 내세운다. 그 합의사항인즉슨 다음과 같다.
1) 이글루스의 본래 모습과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2) 영업양수를 통해 이글루스 운영진을 보존하여 1)항을 만족시킨다.
3) 이글루스 운영진이 안정된 환경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죽인다. SKCS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자선사업을 하려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신사적인 합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허나 계약서란 것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계약서 상의 합의사항에는 합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건들이 무수히 붙어 있다. 예를 들어 1) 항의 '최선을 다한다'라는 것이 강제 조항이란 규정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머지 2개 항목은 오직 피고용인에 관한 조항일 뿐이며, 사용자에 관한 조항은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인수 계약을 추진한 당사자들이 진심으로 사용자를 고려했다면 4) 사용자 편의성을 지속적으로 유지, 향상시키는 데 합의한다라는 조항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SK커뮤니케이션즈와 전화 통화(아까짱님의 블로그 중에서)에서, SKCS 관계자는 여전히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 SK 정도 되는 대기업이 돈도 안 되는 사업체를 '파트너'로 삼고 돈도 안 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현재와 같은 형태로 유지하는데 몇십억이란 돈을 쏟아부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신화를 믿는 편을 선택하겠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 되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수자인 SKCS에게 있어서 사용자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돈벌이의 대상일 뿐이다. 앞서의 기사에도 언급된 사실이다.
(전략)...SK커뮤니케이션즈가 이번 영업 양수를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의미는 아래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풍부한 콘텐트 네트워크의 확보
2) 네이트닷컴 내부의 한계성 극복 .....(후략)
풍부한 콘텐트 네트워크. 그러니까 이글루스 사용자는 일벌처럼 열심히 컨텐츠를 생산해 주는 존재로 비쳤다는 얘기다. 젠장맞을, 정말 죽인다. 어쨌건 돈 버는 놈들의 시각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니까.
SKCS의 이야기처럼, 이글루스가 현재의 서비스 그대로 운영되리라고 믿는다면, 그건 너무 순진하거나 너무 멍청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인수 주체인 SKCS는 이글루스의 사용자 컨텐츠로 자사 서비스의 위상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할 것이다. 간단하게는 네이버 블로그나 붐업처럼 네이트닷컴 탑페이지에 이글루스 블로그를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메신저나 휴대폰 서비스와 연계하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약관도 조금씩 바뀔 것이며, 이글루스 운영진의 반발이 조금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곧 무마될 것이다. 이 불경기에 잘리기 싫으면 그냥 회사에서 가자는 대로 가는 거지, 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배고파서 팔아치웠다는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라는 거다. 이글루스에 충성을 바친 회원을 굴비두름처럼 엮고 그 회원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컨텐츠를 곶감처럼 꿰어 팔아치웠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거다. 이수일의 순정을 버리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택한 심순애처럼, 이글루스가 사용자들의 충성심을 등지고(또는 이용해서) SK의 돈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뒤늦게 상호 합의가 어쩌구저쩌구 파트너가 이러쿵저러쿵 기름진 이야기로 포장하고 달래려 해 봐야 소용없다. 현실은 현실이고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떠날 때는 떠나고 버릴 때는 버리는 것이 사나이다.
- 끝 -
사실상 이것이 이글루스에 마지막으로 올린 포스트였습니다. 이글루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