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장: 철혈무쌍(鐵血無雙) (6)
장손혁 일행의 앞에서 나타난 것은 과연 백백신교의 사람들이었다. 쐐기 모양을 그리며 달리는 세 마리 말이 앞장서고 조금 뒤처진 거리에서 열 다섯 명이 뜀박질로 쫓아오고 있었다. 선도마에 올라탄 것은 구렛나루 수염을 기른 우락부락한 인상의 장년 사내였다. 몸에는 사치스런 하얀 도포를 입고 오른편 허리춤엔 약사여래가 새겨진 은패(銀牌)를 노리개처럼 드리우고 왼편엔 삼척 장검을 찼다.
그는 바로 백백신교의 5대 장로 중 하나인 백양장로(百樣長老) 서종화였다. 어렸을 적부터 북직례성(하북성) 한단의 흑도 방파에 몸을 던져 무술을 배웠지만 솜씨는 겨우 삼류를 면할 정도였다. 그래서 큰 물에서 놀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먹고 살 길을 찾는다고 시작한 게 건달짓이었다. 뜻이 맞는 왈패들과 함께 '백양파(百樣派)'라는 건달 조직을 세워 두목 노릇을 했는데, 하는 짓이라곤 한단의 뒷골목에서 장사꾼을 등쳐먹고 기녀들을 뜯어먹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이 마흔 줄에 접어들 무렵, 그는 백백신교에 입문했다. 살아 있는 미륵불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달콤한 설교에 넘어갔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교(邪敎)에서 물씬 풍기는 돈 냄새를 놓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비록 삼류라곤 하지만 무림인이 입교한 사실은 교주와 다른 장로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장로직을 하나 더 추가해 서종화를 그 자리에 앉히고 다른 무림인들을 회유하려 했다. 하지만 제정신이 박힌 무림인들은 '곽외와 천리마의 고사(古事)를 서종화로 흉내낼 셈인가? 가소롭도다'라는 말로써 서종화를 장로로 떠받드는 백백신교의 무리를 비웃을 뿐,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서종화가 비록 삼류긴 해도 무림인임엔 틀림없었다. 다른 신도들과는 달리 말을 탄 자세도 안정적이었고 숨쉬는 소리도 평온했다.
그는 현지위를 암살할 사람들을 객잔에 보내 놓고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쉬고 있었다. 조만간에 현지위의 목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렇기에 어젯밤, 잘린 손목에서 피 냄새를 풍기며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돌아온 부하가 전해준 비보를 듣고서는 한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부하를 그러모아 객잔에서 중원으로 통하는 한 가닥 길을 막으러 나섰다. 현지위는 어차피 독을 당해서 힘을 쓰지 못하니, 그를 돕는 자가 제아무리 고수라 해도 이만한 숫자를 혼자서 상대하진 못할 것이라 믿었다. 서종화는 감히 자신의 부하를 해친 자가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뺄 것이라 생각하며 즐거워했고, 번개같이 내달려 칼을 휘둘러서 그 자의 목을 몸에서 떨어트리는 장면을 상상하며 더욱 즐거워했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장손혁이 네 마리 말을 방패처럼 둘러치고 안장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걸 보고는 무의식 중에 혀를 찼다.
"바보같은 놈, 저런 걸로 우릴 막을 생각인가?"
그가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손을 높이 들어올리니 뒤따르던 신도들이 말을 세우고 발을 멈췄다. 서종화는 푸르르 몸을 떠는 말을 진정시키고 안장 위에서 허리를 곧추세우며 상대방을 쳐다봤다. 거리는 삼백 보 가량, 장손혁은 천을 둘둘 말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네놈이 엊그제 현지위를 도와 우리 형제를 해친 놈이냐?"
서종화가 걸걸한 목소리로 묻자 장손혁은 이렇게 답했다.
"그 친구를 특별히 도운 건 아니지만 자네 친구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건 사실일세."
"네놈의 이름은 뭐냐?"
"어저께 밤의 녀석들은 똑같이 예의 범절을 모르니 역시 자네 형제가 맞군. 남의 이름을 묻고자 할 때는 먼저 자기 이름을 밝혀야 하지 않나?"
장손혁이 반문하니, 서종화는 벌컥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백백신교의 백양장로 서종화다. 네놈이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형제를 해친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 게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후회하고 용서를 빌면 편히 죽여 주겠지만, 계속 그 따위로 건방을 떨면 우리 열여덟 명이 네놈을 다진 만두 속처럼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 말에 장손혁은 키득대며 비웃음을 날렸다.
"너희처럼 숫자나 믿는 놈들은 열 여덟 명이 아니라 백팔십 명이 덤벼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덤빌 테면 얼마든지 덤벼 봐라."
더 이상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종화는 왼손으로 칼집을 두들겼다. 서슬 퍼런 날이 양쪽으로 이어진 폭이 넓은 양날검이 튀어나와 오른손에 잡혔다. 그는 예리한 칼끝을 장손혁에게 겨누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죽여라!"
세 필의 말이 히힝 울부짖으며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서종화는 칼을 앞으로 내민 채 당당한 모습으로 내달렸다. 양옆의 기수(騎手)들은 쇠로 만든 편곤(鞭棍)을 꺼내 크게 휘두르며 바람을 갈랐다. 뒤따르는 자들은 저마다 손도끼와 단검과 장검을 꺼내들고 함성을 지르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삼백 보, 이백 보, 선명한 피보라를 기대하며 살육의 광기에 한껏 달아오른 무리와 장손혁 사이의 간격은 계속해서 좁아졌다. 그는 장승처럼 멀거니 적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백오십 보, 백 보, 그는 허리를 숙이고 느릿하게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마치 녹슬지 말라는 듯이.
여든 보, 일흔 보, 안장덮개에 매단 보따리 속으로 그의 손이 들어갔다. 예순 보, 쉰 보, 장손혁은 몸을 쭉 펴면서 한 자루의 활을 꺼냈다. 짤막한 단궁(短弓)에 풀무처럼 생긴 커다란 기계가 붙은 활, 제갈노(諸葛弩:手弩弓-지렛대의 힘으로 화살을 연사하는 쇠뇌)였다. 그는 왼손으로 노상(弩床: 제갈노의 몸체 부분)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고현기(지렛대)를 움켜잡았다.
-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