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한 평전으로 그쳐서는 장사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역도산의 출생지라 할 수 있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 즉 북한 - 의 [역도산] 만화가 첨부되어 있다. 만화가는 김태권 씨, 북한 사람이니만큼 자세한 이력은 불명으로 남아 있다.
불행히도 북한판 [역도산] 만화의 완성도는 엉망진창이나 다름없다. 역도산을 '왜놈과 양키들에게 맞서 싸운 조선인 애국자'로 미화한 정도야 애교로 봐 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고우영 화백도 한때 오오야마 마쓰따쯔(최영의)를 '왜놈과 양키들에게 맞서 싸운 태권도 고수'로 묘사한 [대야망]을 그리지 않았던가(최영의에 대해선 언젠가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터인즉, 여기선 생략하겠다).
하지만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다룬 만화답지 않게, 레슬링 장면은 가히 가관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넉 사자 굳히기 Figure four leg lock'는 상대편의 다리를 4자 모양으로 비틀고 조여서 고통을 주는 기술이건만, 여기선 상대편의 몸에 4자 모양으로 달라붙는 기술로 그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기술을 당하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더 괴롭다.
하지만 김남훈 씨의 글은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에서 씌어졌다. 승리를 위해 지독한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의 성공을 위해 조선인이란 사실을 철저히 감추었던 역도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까발린다. 제자들에게 급료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혹독하게 다그치고, 한밤중에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돈 세는 재미로 살았던, 치사하고 더러운 모습을 낱낱이 공개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프로레슬러답게 역도산의 경기를 진지한 태도로 반추한다. 기술과 기술, 힘과 힘이 부딪히는 레슬링 장면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니 역도산이 싸우는 모습이 머릿속에 절로 떠오른다.
(역도산의 경기 대부분은 오늘날의 WWE와 마찬가지로 미리 정해진 각본대로 운용되는 '쇼'였다. 그러나 프로레슬링 팬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프로레슬링은 단순한 '쇼'가 아니라 목숨을 건 '격투 쇼'다.
프로레슬링 자체는 위험하기 그지 없는 고난도의 격투 기술이다. 제아무리 쇼라 한들, 레슬러들이 시합 도중에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당하는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이것은 역도산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역도산의 레슬링 경력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급급하여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니, '평전'이라고 부르기엔 약간의 부족함이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역도산에 관심있는 프로레슬링 팬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참고 링크 : 믹 박사의 소화 프로레스 연구실(일본어) - 소화불량(?) 시대의 일본 프로레슬링 자료를 모아놓은 일본어 사이트. 50~80년대 초엽의 레슬러 프로필, 경기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