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타블렛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애플에서 타블렛을 곧 출시할 거란 소문 때문이다. 화면은 7인치라느니, 10인치라느니, 출판업계와 손잡고 아마존 킨들을 작살낼 비밀병기라느니,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새로운 기기가 될 거라느니,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루머가 떠돌고 있다. 그리고 나오기만 대박을 칠 거란 기대감의 애플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아니, 아주 이상하다.
일단 타블렛이란 건 어디서도 성공한 적이 없는 형태(Form Factor)다. MS의 타블렛 PC에서부터 노키아의 웹 타블렛까지, 모두가 철저한 쪽박과 실패를 맛보았다. 기껏해야 조막만한 틈새 시장에서 아둥바둥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MS가 줄기차게 밀어붙였던 타블렛 PC의 기본 발상 자체는 얼핏 보기엔 괜찮아 보였다. 조금 CPU가 떨어지긴 해도 소형 노트북에 비견할만한 넓은 화면에선 웹브라우징도 할 수 있고, 이메일도 주고받을 수 있고, 동영상도 볼 수 있었다. 휴대성도 괜찮은 편이었다. 근데 뭐가 문제였던 거지?
문제의 핵심은 이거였다. 키보드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필기인식으로 키보드를 대체하려 했다는 사실.
필기인식이란 아이디어는 별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1) 키보드보다 느리고 2) 인식 오류도 많고 3) 10인치급 화면에선 전용 펜(와콤의 전자기유도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용 펜이 필요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10인치급의 화면에서 정전식이나 감압식을 채택하면 글자를 쓸 때, 손바닥의 다른 부분에 눌려서 인식 오류가 일어날 테니까. 애플이 최근에 낸 특허에 나오는 것처럼 눌리는 부분의 면적을 측정해서 손가락으로 쓰는 건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과연 정확도가 얼마나 높을지는 의심스럽다.
물론 전용 펜을 채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펜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인해 타블렛 PC 중에는 아예 별도의 키보드를 달고 나온 제품도 있었다. 잠깐만, 그럼 도대체 왜 타블렛을 사는 거야? 그냥 노트북을 사는 게 낫잖아!
노키아나 다른 단말 제조업체에서 만든 웹 타블렛은 달리 말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장난감이었다. 비싸고, 멋지지만, 돈자랑 이외엔 아무 가치도 없는 장난감. 그런 걸 살 바엔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폰을 사는 게 훨씬 낫다.
돌이켜 보면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다른 스마트폰보다 기능도, 어플리케이션도 많이 부족했다. UI/GUI가 뛰어나고, 웹브라우징을 비롯한 기본 기능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실행시킬 수 있고, (보조금 덕분에) 가격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즉, 스티브 잡스의 주장과는 달리 '휴대폰의 새로운 발명'이라기보다는 '아쉬운 점을 대폭 개선'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타블렛 시장은 휴대폰은커녕 스마트폰 시장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장 규모가 작다.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좋다.
도대체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팔리는 물건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놀라운 휴대성을 강조해야 하나? 애플의 장끼인 UI를 내세워야 하나? 아니면 아이튠즈? 루머에 떠도는 것처럼 영화와 음악, 거기다가 서적까지 망라한 각종 미디어를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맞다, 휴대성, UI, 사용자 편의성, 모두 다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건 가격이다. 루머 기사에서 언급하는대로 애플 타블렛이 1000달러를 조금 밑도는 가격에 나온다면 성공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자, 보세요. 이건 기존에 여러분들이 꿈도 꾸지 못하던 혁명적인 디바이스랍니다. 5살배기도 쓸 수 있는 편리한 UI와 가벼운 휴대성, 그리고 책부터 영화까지 골라볼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놀라운 디바이스의 가격은 단돈 1000달러, 주저하지 말고 지금 당장 주문하세요! 아, 물론 애플 스티커도 덤으로 드린답니다.
음, 글쎄, 괜찮긴 하네요. 특히 애플 스티커가 말이죠. 하지만 그걸 살 바엔 300달러짜리 넷북을 사는 게 더 나아 보이는데요? 나머지 700달러로는 아이폰을 사고 말이죠.
뭐, 이렇게 될 공산이 굉장히 높다. 제아무리 애플이라고 해도 타블렛 시장을 개척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 가능성은 하나 있다. 와콤, 그리고 어도비와 손 잡고 1024단계 필압 감지 기능을 갖춘 타블렛 하드웨어를 만들고, 여기에 페인터에 맞먹을 만한 드로잉 소프트웨어를 넣어서 1000달러에 파는 거다. 휴대성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겸비한 디지털 화판(畵板)으로써. 이거, 일본의 그림쟁이 오타쿠들에겐 날개돋힌 듯이 팔리 게 분명하다!
아아, 물론 스티브 잡스는 절대 그런 걸 만들지 않겠지. 그 치는 그런 쪽의 오타쿠는 아니니까.


